8/13火.숙제:{염불,염법,염승}에 대해 고찰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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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24-08-15 00:14 조회4,2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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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부처님께서는 일생 행하신 설법 전반에 걸쳐 염불, 염법, 염승하는, 즉 삼보 안에서 사는 중생은 괴로움 두려움이 없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불교 신자이게 되는, 믿고 의지하는 불법승 삼보에 대해, 하루 중 얼마나 염불, 염법, 염승을 행하고 사는지, 그리고 몀불 염법 염승은 과연 무엇을 일컫는 것인지 알아봅시다.]
#*시아원(한희주)
숙제 올립니다
저는 "염불, 염법, 염승하며 사는 중생은 괴로움 두려움이 없다!" 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오십여년을 살아오면서 제 스스로 겪고 느낀 결과입니다.
우리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항상 하시던 말씀 중에 "나에게 빽은 부처님 빽 밖에 없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최고의 든든한 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 땐 어려서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사회 생활을 하며 마음의 고통과 현실의 고통들이 닥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나무 관세음보살_()_ *나무 지장보살_()_
*나무다보여래불_()_을 염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고통도 사라지고 , 평화가 찾아 오고, 현실의 고통도 경감되거나 해결 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말씀 "부처님 빽밖에 없다"라는 의미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
예전의 저는 염불하며 "~해 주세요" ~~을 이뤄 주세요~" "뜻대로 되게 해 주세요" 등의 기복에 바탕을 두고 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저의 소원들 중에 이뤄지고 해결 된 것도 많았습니다.
기도대로, 원대로 이루어진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이고, 곧 다시 또다른 것을 원하고 바라는 저를 알아차리던 어느 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 ~해주세요."를 버리고
"부처님 감사합니다!"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 역시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탐진치 삼독에 빠져 원하기만 하는 저를 문득 일깨워 주셔서 조금이나마 수행하는 불자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하루 24시간 중 시시때때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님 나무다보여래불을 입으로 염하고 있습니다. 월 ~금요일 까지 집에서 염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나브로 해이해져서 기도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모두 합해서 계산해 보면...하루 1시간 정도 염불 염법 염승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너무 짧게 짧게 염하다 보니 지속력이 많이 떨어져서 겨우 길어야 1시간 정도 염불 염법 염승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자나깨나 오직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 염법 염승하도록 노력 해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 ()
광도중생(廣度衆生)()나무마하반야바라밀 ()
#*자성화(신은영)
삼보에 대한 염불, 염법, 염승에 대해 생각해 보니 제가 처음 불법을 만날때와 조금씩 달라진 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불법을 만났을 때는 그저 부처님한테 기도를 하는 기복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부처님께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경을 읽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암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참선에 대해 모르던 시절이라, 경읽기, 경쓰기, 관세음보살 염불, 108배 등으로 삼보를 염했습니다. 시간은 하루 5-10시간 가까이 3개월동안 법화경 사경을 했던 적도 있고, 약 3-4년 동안은 매일 반야심경, 천수경, 108배를 한 적도 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여행을 가서도 호텔 방 바닥에 수건을 깔아놓고 경읽기와 108배를 했습니다. 차에서도 스님들의 법문을 항상 틀어놓고 다니고, 집에서도 향을 피우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마음에 괴로움이 많았고, 간절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혼자 수행을 해 나가면서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고, 법화경을 사경하면서 도문스님의 법화경 법문 테이프를 항상 들었었는데, 이게 정법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법 발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리고 지암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 수행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참선을 알게 되었고, 참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독경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것을 멈춘 건 아니지만, 참선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선은 계속 해 나가면서 절에서 기도하는 때나, 개인적으로 기도가 필요한 시기에는 집에서 독경, 기도, 염불, 절수행 등을 추가로 했습니다. 시간은 한시간 정도씩 했습니다.
지금은 주로 알아차리기와 이뭣고 화두를 챙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번뇌와 망상은 머리속에 하루종일 떠다니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감정을 일으키는 망상이나 번뇌가 떠오르면 바로 알아차리고, 화두를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딸아이가 외출을 하는데, 옷이 내가 보기에 적절치 않아 보일경우 전 같으면 한마디를 했습니다. 추울 것 같다는 둥, 다른 옷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둥… 그런데, 지금은 딱 그 생각이 올라올때 알아차리고, ‘아, 내가 지금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내 말에 따르기를 바라는 구나’ 하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딸아이가 생각할때는 자기가 장소에 알맞게 옷을 입었고, 그게 맞을 수도 있는데, 내 경험과 내 생각을 강요하려고 했습니다. 전에는 내 말에 따르지 않다가 감기가 들면 네가 책임지라며 협박을 하기도 했었구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그러다 감기에 들어도 따뜻한 물을 챙겨주고 약을 챙겨주고 밥을 챙겨주고 정성껏 보살펴 줍니다. 사소한 예이긴 하지만, 부모님을 대할 때에도, 친구들을 만날때에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에도 알아차리기와 이뭣고를 하면서 이 문제에서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은 무엇일 지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 비난을 받거나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격앙된 감정으로 나에게 쏟아내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관세음보살님이라면 어떻게 말을 하고 행동할까를 생각합니다.
하루에 때때로 이뭣고를 하면서 멈추어 가만히 앉아서 참선을 하기고 하고 이일 저일 하면서도 가끔씩 이뭣고를 하는 시간들을 따져보면 한 30분 -1시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하루중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이뭣고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은 선정에 드는 것을 다음 목표로 하고 수행 중입니다. 그 사이사이에도 작은 깨침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알아차리기과 이뭣고 화두 수행이 지금의 염불, 염법, 염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이니까요. 믿고 이해하고 해보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증명할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댓글 이지연 - ‘내 경험과 내 생각을 강조하려 했다는‘ 알아차림의 부분 참으로 공감이 갑니다. 저도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교만에 대해 '나는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1인인데 내 아집과 고집이 곧 교만이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 충돌이 일어나고 내 기분이 상하기도 함을 깨닫았습니다. 제 맘을 알아차리셨네요 ㅎ
#*정명(正明박순홍)
숙제 올립니다.
1.염불念佛 : 한 털구멍 속에 삼천대천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수 많은 부처님들께서 과거, 현재, 미래세에 가득한 바, 내 주위에도 유정, 무정의 부처님들과 함께 공생을 하고 있지만 실로 느끼지 못하고, 또한 이 몸도 소우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미혹한 중생 이 오늘도 지극한 마음과 일념으로 오체 투지해 봅니다.
佛이란 깨쳤다는 뜻이니 몸과 마음을 살펴 악한 것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염이란 생각하는 것이니 계행을 생각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기에 염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염불한다 하면서 진실한 뜻을 모르고 입으로만 부처님 명호를 외운다면 헛된 시간 낭비로서 아무런 이득이 없을 것 입니다. 그러기에 한 부처님, 한 명호를 일념으로 정근하며 일심으로 일향을 올리는 것이야 말로 오분향례를 올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도시간에 관음정근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정근을 올리면서 잠깐이지만 몸은 사라진 채 소리와 마음이 일체가 됨을 느낍니다. 육신은 잊어버린 채 앞뒤로 꽉 막혀 숨이 막힐 정도의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간절히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며 이러한 시간을 증장시키려 노력하지만 이 또한 넘어야 할 상이요, 경계인 줄 알면서도 잠시 머물다 그곳 에서 빠져 나와 기도를 마친답니다.
2. 염법念法 : 저는 평소에 종단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으로 간경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라 대강 다독으로 넘기 곤 했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작업장에 우리말 금강경을 틀어놓고 일하면서, 걸으면서 손님을 맞으면서 금강경의 사구게를 되뇌이고 뜻을 헤아려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사상이 주가 되지만 공이 이 아닌 무아를 이야기 함에
"-- 즉비요 --시명이다" 즉 "--는 아니고 다만 그 이름이 --이다"라고 강조하시며 실체 없음과 제행이 무상함과 제법이 무아임을 알 떄 즉견여래라 하고 말씀하신 내용을 하루하루 새기며 그렇게 보고 그렇게 행하리라고 다짐을 해봅니다.
3. 염승念僧 : 우리는 어떠한 스승을 진정한 스승으로 받들어 모셔야 하는가? 늘상 " 삼보에 귀의합니다" 하고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곤 합니다만, 스님 말씀대로 가사와 장삼을 입고 있다고 하여 다 스님 으로서 경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적어도 언행이 일치하고,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지 않고, 계를 구족하고 선정을 닦아 지혜를 구족하여 청정과 화합을 우선적으로 삼아 정법을 수행하는청정하고 당당한 스님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으로서 중생들은 마땅히 따를 것 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상 우리들과 함께하며 정법을 말씀하시며 전법을 하시지만 이를 집중하지 못하고 법문을 듣다 보니 스승에 대한 진정한 도리나 마음가짐에 소홀하였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에 부디 자비심으로 가피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침 저녁으로 칠정례를 일념으로 올리며 수많은 부처님과, 부처님 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법해 주시는 진정한 스님들께 귀의 하겠습니다.
오늘 자비참법 제 10권의 마지막에 나오는 좋은 경문을 공유해 봅니다.
"부처님께 귀의할 때 바라오니 모든 중생 큰 도리를 이해하고 위 없는 맘 내어지다."
"법보에게 귀의할 때 바라오니 모든 중생 四장 속에 깊이 들어 큰 지혜를 얻어지이다."
"스님에게 귀의할 때 바라오니 모든 중생 많은 대중 통솔하여 온갖 장애 없어지이다."
"모든 거룩한 이에게 예경하나이다."
#*○山(안학선)
숙제를 올립니다.
염불
부처님의 명호와 대비심과 일체지와 위신력 등 일체공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며 염불로서 근심과 공포 각종 고통을 제거하고 평온과 자비심을 증장할 수 있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염법
양변을 떠나 증도로써 세소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가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갈애를 인연으로 한 세간의 가지가지 고통과 열뇌를 떠났으며 사견을 인연으로 가지가지 논의와 다툼을 떠나서 몸과 마음에 연락을 얻는다.
염승
사쌍팔배의 성중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거룩한 제자들은 열반을 잘 향하고 곧바로 평등하게 향하여 법답게 수순하여 수행하고 아라한을 얻는다.
염불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나 보살의 이름과 모습을 끊임없이 마음에 집중함으로써 번뇌와 망상을 없애며 깨달음을 이루고 불국정 토에 왕생하는 수행방법 이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부터 염불,염법,염승 이라고 모든 경전에 나와 있고, 원래 우리가 부처의 때문에, 또 부처가 돼야 하기 때문에 염불을 따지고 보면 내가 " 참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염불이 곧 불심 또는 불성을 바로 깨달아 체득하게 하는 행법임을 분명히 했다.
저는 미국에 온 지 20여일만에 미국 동서남북을 차량으로 오가며 장사를 시작 하였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염주와 낡은 불자수지독송 책과 백고좌법회 카세트 테이프를 의지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우리 가족은 설레임과 무서움과 두려움 없이 여기저기 유랑극단과 같은 생활을 하던 중에, 38년 전 1986년에 달라스에 도착하여 몇몇 불자들과 묘봉스님을 처음 만나 뵙게 되었읍니다.
묘봉스님께서 선문찰요 책을 건네 주시며 열심히 공부 하라고 하시고는 훌쩍 떠나셨읍니다. 그러나 그 책은 내용도 어렵고 마음에 대한 얘기가 가슴에 와 닿지도 않고 하여 책꽂이에 넣어두고 잊어 버리고 있었읍니다.
세월이 흘러 선원장지암스님을 뵙고 천일기도를 시작하면서 문득 선문촬요가 생각이 나서 열어보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가 있었으며 참선에 관한 책인 것을 알수가 있었읍니다.
선문찰요 첫장에 "예배하는법" 내용
"만일 눈 앞에 나타난 모양과 형상에만 접촉하여 예배 한다면 이미 달마 스님께서도 경고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런 공덕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악도에 떨어지는 인만 쌓게 될 것이다.
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어느것을 택하였든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사람들도, 염불하는 가운데 무엇이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있는지?
하는 의단을 잃지 않는 가운데 간절히 염불 한다면 이것은 곧 심중의 참-불보살님께 염불하는 바른 길을 뿐만 아니라 화두까지 공부하게 될 것이다. 주력 외에도 가지가지 행도에 이르러 무엇을 하든지 모두 이와같이 공들이는 생각 속에서 공부를 지어 가기만 한다면 이로 인해 얻어지는 음덕은 마음 가운데서 성취되는 가장 뛰어난 공덕일 뿐 아니라 그 복덕은 언어나 문자로는 도저히 비유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1984년 11월 20일 덕궁총림 혜암>
저는 이렇게 염불선을 알게 되면서 환희심을 내며 열심히 하던중 생사를 오가는 장애와 고난이 생기며 길지않은 시간동안 떨어지고 부러지고 깨지고 물리고 응급실에 실려가며 그 당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두려움을 생각할 여유도 없으며 회사가 파산을 피할수 있는 길이면 지옥 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불렀던 그 시절이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잠시 여유가 있어 지난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스님께서 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깨어있어라.' '알아차려라.' 하시는 말씀은 그 동안 가르쳐 주신 실상을 잃어 버릴 것 같아 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상을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이 염불선 입니다. 저는 생각이 날때마다 수시로 관세음보살의 원력과 거룩함을 찬탄하면서 관세음보살님 의 가피로 성취 되기를 발원 합니다.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고 있읍니다. 무엇이 대다라니를 독송하고 있는지 하는 의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어느 날은 다라니를 독송하면서 몸과 마음도 가볍고 머리도 맑으며 지루한 느낌도 없고 상쾌하여 기분이 좋읍니다. 특히 미국사회는 기다림이 일상화 되여 있어 어느 장소에서나 기다리는 동안 다라니를 몇번 염을 하면 지루하지 않고 원했던 일을 마칠수가 있읍니다.
또 어떤 날은 몸도 무겁고 번뇌망상이 가득하여 하는둥 마는둥하며 지루하게 끝마치고 허탈한 때도 있읍니다. 그건 간절함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읍니다. 그래도 불교대학 법우들과 함께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기쁨입니다.
제가 관세음보살님을 염불하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로 변경한 것은 예전부터 해 온 습관인지 아니면 주위에서 많은 보살님들이 정성을 다해 늘 그렇게 해왔듯이 관세음보살님 이렇게 해주십시요. 저렇게 해주세요. 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또한 나를 다시보며 내가 필요하고 간절해서 소원성취를 위해 관세음보살님을 찾고는 있지만 세상 모든 것의 실상인 진공모유를 공부하는 저와 법우들은 다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할 뿐" 속에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 녹아 내려 있읍니다.
어느날 지암스님께서 법문 중에 우리 보현사 불자들은 무게 중심을 소원을 비는 것에서 서원과 발원을 해야지 대동 세상 너와 나 모두를 위한 행복이라는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읍니다. 그래서 같은 뜻이지만 그 동안 소원을 빌며 부르던 '관세음보살' 보다는 삼독을 없애고 지혜자비를 성취하는 내용인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내 불자로서의 신행 길인 서원에 구체적인 것 같아 변경을 하게 되였읍니다.
꼭 미혹으로 타오르는 삼독의 불을 다 꺼트리고 지혜 자비의 빛이 되겠읍니다.
#*이지연
불법승 삼보, 염불 염법 염승에 대한 생각과 실천은 불교 대학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교 대학 이전에는 생각 날때마다 우후죽순으로 경을 읽거나 108배 참회기도를 하거나 절에 가면 경을 읽고 스님 법문을 듣곤 했습니다. 불교 대학 이후에는 공부를 하거나 숙제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염불을 정해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불법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훨씬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알아차림을 실천하려고 하고 부터는 갑자기 불거져 나오는 화나 원망 등이 생길때마다 나무아미 타불을 외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러한 마음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이를 풀어 낼것인지 등을 수업에 배운 교리들을 통해 해석해보고 마음을 차분히 하고 화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원래 화가 많은 성격은 아니었으나 화가 많은 1인과 몇년을 살다보니 물이 들어 화를 내는 일이 잦아져 덕분에(?) 요즘은 더욱 더 불법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곱씹으면서 나를 바로 세울수 있고 마음이 더 가벼워지는걸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줌 수업을 도입해주신 불대학장님, 장비 세팅하느라 늘 수고하시는 우리 법우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20여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불교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 다니던 절의 스님께서 울지 말고 49일동안 절에 와서 기도를 하라 하신 것이 절에 다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 불교는 기복신앙이기 보다는 힘들때 의지 하고 많은 이해되지 않는 세상 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부터는 부처님께 바라는게(?) 점저 더 많아지게 됩니다. 아이가 건강하고 무탈하도록, 내가 건강하도록, 직장을 오래 잘 다닐 수 있도록, 아들도 불교를 가까이 하고 맘편하게 살도록…. 이제 좋을때나 힘들때나 부처님을 부르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불대를 계속 하면서 불법을 더 심도있게 배우고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녹야원(이경희)
일요 법회에 스님께서 핵심과 디테일을 말씀해주셔서 다시 한번 생각 해보고… 저의 신심과 불연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전 참선을 먼저 접하고 불법에 관해 공부한 케이스라.. 신심의 중요성을 나중에 알게된 불자인데요. 불자라고 자신있게 말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듯 싶습니다. 그만큼 무지하고 교만한 마음이 꽉 차 있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본질…즉 제 마음을 제대로 보질 못 해 참선을 하나 어떤 기도를 하나.. 모두 껍데기.. 수행(?) 이였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교만이 치성한 어느날.. 참선 반 어느 보살님께서 기도하면 좋다고 해서 기도하는 법도 모르고 그냥 천수경과 다라니 독송을 하게 되었는데… 저의 첫 기도 제목은 “선지식을 만나게 해주세요”였습니다. 물론 선지식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ㅋㅋ 그냥 있어보이려고 했나? ㅋㅋ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데.. 그렇게 20대에 그 당시 볍련사 선원장 스님과 가깝게 인연이 되고 이런저런 봉사도 하면서 술을 그렇게 마시고 놀면서도 일주일에 두번의 참선반은 안빠지고 잘 다녔던게 제 신심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결혼을 해서도 저의 인연 복에 따라 우리 절 보현사 선원장 스님도 만나서 정법에 대해 더욱 확고한 믿음과 불자로서 신심이 더 돈독해 졌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제일 큰 감사 인연은 왜 신심이 중요한지 진짜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 처럼… 그런데도 이렇게 교만과 아집이 확~~~! 놓아지진 않는 걸 보면 아직도 멀긴하지만요. 이렇게 큰 틀안애서 부처님과 불법에 대해 놓치 않고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승보… 사실 우리 선원장 스님과의 인연에 대해 감사함을 말하고 싶은데요. 전 참 눈물도 없고 이성(?)적인 인간이였는데… 작년과 올해 기도 하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스님 생각하면 눈물도 잘 나요… ^^;
저 같이 감성이 아주 떨어지는 인간도 기도 하면서 진심으로 상대방에 대해 동화도 잘 되고 이심전심이 무엇인지 진짜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몇 번이고 스님 뒤에서 기도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던거 같아요. 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고 최고의 희열입니다. 전 기도할 때 “부처님, 늘 좋은 인연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하는데요. 인연법의 중요함을 놓지 말고 늘 감사하며 회향 잘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작게 나마 불법승 삼보에 살고 있는 저는.. 사실 크게 두려운 것도 불안한 것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 공부도 하고 취직도 하고 할 때도 제 능력에 대해 답답한게 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초조해 하진 않았습니다.
요즘은 하루 일과 중 환자를 볼 때 속으로 기도를 해주거나 운전 할 때, 눈뜨고 감을 때 가능한 화두를 들거나 염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백련화(권혜정)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108배 참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300배, 600배 기도와 진언 기도를 하며 저만의 기도 루틴을 만들어갔습니다. 이 시점에서 염불은 불보살의 이름을 외우며 마음의 위안을 찾는 중요한 실천이었습니다.
셋째가 두 돌이 지나면서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천수경 CD를 통해 제 수행은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한자로 된 경전을 뜻도 모르고 읽기만 했으나, 천수경 CD를 통해 경전의 내용을 알게 되었고, 그 가르침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천수경을 들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점점 가까워졌고, 단순한 기도를 넘어 경전 공부와 스님들의 법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과정은 염법의 시작을 의미하며,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혼자서 21일 기도를 반복하던 중, 절에서 지암 스님께서 이끄시는 100일 기도에 동참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기도의 반복을 넘어서 염승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스님께서 보여주신 모범과 가르침을 통해 기도와 수행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로 꾸준히 100일 기도에 참여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곁에 계셨기에 제가 보고 배울 수 있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공부가 훨~씬 더뎠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저는 의식적으로 광명진언을 염불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어서 능엄신주 기도와 반야심경, 법성게를 독송합니다. 특별히 마음이 쓰일 때에는 기간을 정해두고 108배 참회 기도를 드립니다. 이 시간은 염불을 통해 불보살님의 에너지와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10분간 참선을 통해 하루를 준비합니다. 이 과정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을 되새기고 마음을 다잡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염법을 실천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 삶에 적용하는 중요한 시간이며,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광명진언을 염불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실천들은 기도를 넘어 더 깊은 수행으로 나아가는 제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 때, 예전에는 몇 번 이해시키려 하다가도 결국 화를 내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마음의 무거움을 남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염불과 염법을 실천하면서 제 감정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래. 그렇구나"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합니다. 일상에서 사람과 생각을 더 잘 다루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며, 제 생각이 법에 맞는지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치우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알아차리고, 법에 맞는 길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 마음이 가벼워지고, 제 수행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때때로 제 수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마음이 불안할 때는 더욱 염불에 집중하고 염법을 실천하며, 스님과의 100일 기도 경험을 통해 염승의 의미를 되새기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넘어서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여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일승법, 즉 모든 법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가르침과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이 바로 일승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각(김다한)
염불
저는 염불수행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일상 생활에서 염불을 아직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 방의 불단에 모셔놓은 부처님 사진을 하루에 몇 번씩 보며 우리 중생들에게 남겨주신,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상의 지혜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중생들을 만날때마다 항상 그들의 불성을 생각하며 부처님을 생각하며 대하려 노력합니다. 더 일찍 불교를 알았더라면 더 일찍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더 일찍 깨닿고, 업도 덜 만들고 그렇게 살았을텐데,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염법
저는 불자로써 항상 세상을 부처님이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대상의 무상함, 무아 무자성,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괴로움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괴로움이 있을때 마다, 또 제가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을 알아차릴때 그려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지금 부처님 법을 안만났더라면 제가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지금도 엉뚱한거에 집착하며 나와 남에게 고통을 만들며 살았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부처님 법을 만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염승
이 위에 제가 쓴것에 비추었을때, 이런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시면서 보살행을 몸서 보여주시는 스님들은 제 삶에 너무 소중합니다. 짧았지만 달라스 사는 동안 지암스님을 알게 된것은 제 인생에 큰 행운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암스님과맺게 된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더 지암스님을 더 오래 알고 가까이 지냈더라면 제가 많이 다른 사람이 됬을거라고 생각해서 아쉽습니다. 이렇게 외딴곳에서 불자들을 위해서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면 지암스님이 많이 힘드실꺼 같고 감사하면서도 걱정도 많이 됩니다. 수계 받을때 지암스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불, 법, 승은 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가 불교 신자이게 되는, 믿고 의지하는 불법승 삼보에 대해, 하루 중 얼마나 염불, 염법, 염승을 행하고 사는지, 그리고 몀불 염법 염승은 과연 무엇을 일컫는 것인지 알아봅시다.]
#*시아원(한희주)
숙제 올립니다
저는 "염불, 염법, 염승하며 사는 중생은 괴로움 두려움이 없다!" 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오십여년을 살아오면서 제 스스로 겪고 느낀 결과입니다.
우리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항상 하시던 말씀 중에 "나에게 빽은 부처님 빽 밖에 없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최고의 든든한 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 땐 어려서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사회 생활을 하며 마음의 고통과 현실의 고통들이 닥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나무 관세음보살_()_ *나무 지장보살_()_
*나무다보여래불_()_을 염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고통도 사라지고 , 평화가 찾아 오고, 현실의 고통도 경감되거나 해결 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말씀 "부처님 빽밖에 없다"라는 의미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
예전의 저는 염불하며 "~해 주세요" ~~을 이뤄 주세요~" "뜻대로 되게 해 주세요" 등의 기복에 바탕을 두고 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저의 소원들 중에 이뤄지고 해결 된 것도 많았습니다.
기도대로, 원대로 이루어진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이고, 곧 다시 또다른 것을 원하고 바라는 저를 알아차리던 어느 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 ~해주세요."를 버리고
"부처님 감사합니다!"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 역시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탐진치 삼독에 빠져 원하기만 하는 저를 문득 일깨워 주셔서 조금이나마 수행하는 불자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하루 24시간 중 시시때때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님 나무다보여래불을 입으로 염하고 있습니다. 월 ~금요일 까지 집에서 염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나브로 해이해져서 기도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모두 합해서 계산해 보면...하루 1시간 정도 염불 염법 염승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너무 짧게 짧게 염하다 보니 지속력이 많이 떨어져서 겨우 길어야 1시간 정도 염불 염법 염승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자나깨나 오직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 염법 염승하도록 노력 해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 ()
광도중생(廣度衆生)()나무마하반야바라밀 ()
#*자성화(신은영)
삼보에 대한 염불, 염법, 염승에 대해 생각해 보니 제가 처음 불법을 만날때와 조금씩 달라진 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불법을 만났을 때는 그저 부처님한테 기도를 하는 기복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부처님께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경을 읽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암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참선에 대해 모르던 시절이라, 경읽기, 경쓰기, 관세음보살 염불, 108배 등으로 삼보를 염했습니다. 시간은 하루 5-10시간 가까이 3개월동안 법화경 사경을 했던 적도 있고, 약 3-4년 동안은 매일 반야심경, 천수경, 108배를 한 적도 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여행을 가서도 호텔 방 바닥에 수건을 깔아놓고 경읽기와 108배를 했습니다. 차에서도 스님들의 법문을 항상 틀어놓고 다니고, 집에서도 향을 피우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마음에 괴로움이 많았고, 간절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혼자 수행을 해 나가면서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고, 법화경을 사경하면서 도문스님의 법화경 법문 테이프를 항상 들었었는데, 이게 정법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법 발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리고 지암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 수행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참선을 알게 되었고, 참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독경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것을 멈춘 건 아니지만, 참선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선은 계속 해 나가면서 절에서 기도하는 때나, 개인적으로 기도가 필요한 시기에는 집에서 독경, 기도, 염불, 절수행 등을 추가로 했습니다. 시간은 한시간 정도씩 했습니다.
지금은 주로 알아차리기와 이뭣고 화두를 챙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번뇌와 망상은 머리속에 하루종일 떠다니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감정을 일으키는 망상이나 번뇌가 떠오르면 바로 알아차리고, 화두를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딸아이가 외출을 하는데, 옷이 내가 보기에 적절치 않아 보일경우 전 같으면 한마디를 했습니다. 추울 것 같다는 둥, 다른 옷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둥… 그런데, 지금은 딱 그 생각이 올라올때 알아차리고, ‘아, 내가 지금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내 말에 따르기를 바라는 구나’ 하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딸아이가 생각할때는 자기가 장소에 알맞게 옷을 입었고, 그게 맞을 수도 있는데, 내 경험과 내 생각을 강요하려고 했습니다. 전에는 내 말에 따르지 않다가 감기가 들면 네가 책임지라며 협박을 하기도 했었구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그러다 감기에 들어도 따뜻한 물을 챙겨주고 약을 챙겨주고 밥을 챙겨주고 정성껏 보살펴 줍니다. 사소한 예이긴 하지만, 부모님을 대할 때에도, 친구들을 만날때에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에도 알아차리기와 이뭣고를 하면서 이 문제에서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은 무엇일 지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 비난을 받거나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격앙된 감정으로 나에게 쏟아내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관세음보살님이라면 어떻게 말을 하고 행동할까를 생각합니다.
하루에 때때로 이뭣고를 하면서 멈추어 가만히 앉아서 참선을 하기고 하고 이일 저일 하면서도 가끔씩 이뭣고를 하는 시간들을 따져보면 한 30분 -1시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하루중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이뭣고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은 선정에 드는 것을 다음 목표로 하고 수행 중입니다. 그 사이사이에도 작은 깨침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알아차리기과 이뭣고 화두 수행이 지금의 염불, 염법, 염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이니까요. 믿고 이해하고 해보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증명할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댓글 이지연 - ‘내 경험과 내 생각을 강조하려 했다는‘ 알아차림의 부분 참으로 공감이 갑니다. 저도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교만에 대해 '나는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1인인데 내 아집과 고집이 곧 교만이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 충돌이 일어나고 내 기분이 상하기도 함을 깨닫았습니다. 제 맘을 알아차리셨네요 ㅎ
#*정명(正明박순홍)
숙제 올립니다.
1.염불念佛 : 한 털구멍 속에 삼천대천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수 많은 부처님들께서 과거, 현재, 미래세에 가득한 바, 내 주위에도 유정, 무정의 부처님들과 함께 공생을 하고 있지만 실로 느끼지 못하고, 또한 이 몸도 소우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미혹한 중생 이 오늘도 지극한 마음과 일념으로 오체 투지해 봅니다.
佛이란 깨쳤다는 뜻이니 몸과 마음을 살펴 악한 것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염이란 생각하는 것이니 계행을 생각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기에 염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염불한다 하면서 진실한 뜻을 모르고 입으로만 부처님 명호를 외운다면 헛된 시간 낭비로서 아무런 이득이 없을 것 입니다. 그러기에 한 부처님, 한 명호를 일념으로 정근하며 일심으로 일향을 올리는 것이야 말로 오분향례를 올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도시간에 관음정근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정근을 올리면서 잠깐이지만 몸은 사라진 채 소리와 마음이 일체가 됨을 느낍니다. 육신은 잊어버린 채 앞뒤로 꽉 막혀 숨이 막힐 정도의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간절히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며 이러한 시간을 증장시키려 노력하지만 이 또한 넘어야 할 상이요, 경계인 줄 알면서도 잠시 머물다 그곳 에서 빠져 나와 기도를 마친답니다.
2. 염법念法 : 저는 평소에 종단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으로 간경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라 대강 다독으로 넘기 곤 했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작업장에 우리말 금강경을 틀어놓고 일하면서, 걸으면서 손님을 맞으면서 금강경의 사구게를 되뇌이고 뜻을 헤아려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사상이 주가 되지만 공이 이 아닌 무아를 이야기 함에
"-- 즉비요 --시명이다" 즉 "--는 아니고 다만 그 이름이 --이다"라고 강조하시며 실체 없음과 제행이 무상함과 제법이 무아임을 알 떄 즉견여래라 하고 말씀하신 내용을 하루하루 새기며 그렇게 보고 그렇게 행하리라고 다짐을 해봅니다.
3. 염승念僧 : 우리는 어떠한 스승을 진정한 스승으로 받들어 모셔야 하는가? 늘상 " 삼보에 귀의합니다" 하고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곤 합니다만, 스님 말씀대로 가사와 장삼을 입고 있다고 하여 다 스님 으로서 경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적어도 언행이 일치하고,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지 않고, 계를 구족하고 선정을 닦아 지혜를 구족하여 청정과 화합을 우선적으로 삼아 정법을 수행하는청정하고 당당한 스님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으로서 중생들은 마땅히 따를 것 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상 우리들과 함께하며 정법을 말씀하시며 전법을 하시지만 이를 집중하지 못하고 법문을 듣다 보니 스승에 대한 진정한 도리나 마음가짐에 소홀하였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에 부디 자비심으로 가피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침 저녁으로 칠정례를 일념으로 올리며 수많은 부처님과, 부처님 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법해 주시는 진정한 스님들께 귀의 하겠습니다.
오늘 자비참법 제 10권의 마지막에 나오는 좋은 경문을 공유해 봅니다.
"부처님께 귀의할 때 바라오니 모든 중생 큰 도리를 이해하고 위 없는 맘 내어지다."
"법보에게 귀의할 때 바라오니 모든 중생 四장 속에 깊이 들어 큰 지혜를 얻어지이다."
"스님에게 귀의할 때 바라오니 모든 중생 많은 대중 통솔하여 온갖 장애 없어지이다."
"모든 거룩한 이에게 예경하나이다."
#*○山(안학선)
숙제를 올립니다.
염불
부처님의 명호와 대비심과 일체지와 위신력 등 일체공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며 염불로서 근심과 공포 각종 고통을 제거하고 평온과 자비심을 증장할 수 있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염법
양변을 떠나 증도로써 세소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가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갈애를 인연으로 한 세간의 가지가지 고통과 열뇌를 떠났으며 사견을 인연으로 가지가지 논의와 다툼을 떠나서 몸과 마음에 연락을 얻는다.
염승
사쌍팔배의 성중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거룩한 제자들은 열반을 잘 향하고 곧바로 평등하게 향하여 법답게 수순하여 수행하고 아라한을 얻는다.
염불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나 보살의 이름과 모습을 끊임없이 마음에 집중함으로써 번뇌와 망상을 없애며 깨달음을 이루고 불국정 토에 왕생하는 수행방법 이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부터 염불,염법,염승 이라고 모든 경전에 나와 있고, 원래 우리가 부처의 때문에, 또 부처가 돼야 하기 때문에 염불을 따지고 보면 내가 " 참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염불이 곧 불심 또는 불성을 바로 깨달아 체득하게 하는 행법임을 분명히 했다.
저는 미국에 온 지 20여일만에 미국 동서남북을 차량으로 오가며 장사를 시작 하였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염주와 낡은 불자수지독송 책과 백고좌법회 카세트 테이프를 의지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우리 가족은 설레임과 무서움과 두려움 없이 여기저기 유랑극단과 같은 생활을 하던 중에, 38년 전 1986년에 달라스에 도착하여 몇몇 불자들과 묘봉스님을 처음 만나 뵙게 되었읍니다.
묘봉스님께서 선문찰요 책을 건네 주시며 열심히 공부 하라고 하시고는 훌쩍 떠나셨읍니다. 그러나 그 책은 내용도 어렵고 마음에 대한 얘기가 가슴에 와 닿지도 않고 하여 책꽂이에 넣어두고 잊어 버리고 있었읍니다.
세월이 흘러 선원장지암스님을 뵙고 천일기도를 시작하면서 문득 선문촬요가 생각이 나서 열어보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가 있었으며 참선에 관한 책인 것을 알수가 있었읍니다.
선문찰요 첫장에 "예배하는법" 내용
"만일 눈 앞에 나타난 모양과 형상에만 접촉하여 예배 한다면 이미 달마 스님께서도 경고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런 공덕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악도에 떨어지는 인만 쌓게 될 것이다.
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어느것을 택하였든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사람들도, 염불하는 가운데 무엇이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있는지?
하는 의단을 잃지 않는 가운데 간절히 염불 한다면 이것은 곧 심중의 참-불보살님께 염불하는 바른 길을 뿐만 아니라 화두까지 공부하게 될 것이다. 주력 외에도 가지가지 행도에 이르러 무엇을 하든지 모두 이와같이 공들이는 생각 속에서 공부를 지어 가기만 한다면 이로 인해 얻어지는 음덕은 마음 가운데서 성취되는 가장 뛰어난 공덕일 뿐 아니라 그 복덕은 언어나 문자로는 도저히 비유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1984년 11월 20일 덕궁총림 혜암>
저는 이렇게 염불선을 알게 되면서 환희심을 내며 열심히 하던중 생사를 오가는 장애와 고난이 생기며 길지않은 시간동안 떨어지고 부러지고 깨지고 물리고 응급실에 실려가며 그 당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두려움을 생각할 여유도 없으며 회사가 파산을 피할수 있는 길이면 지옥 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불렀던 그 시절이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잠시 여유가 있어 지난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스님께서 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깨어있어라.' '알아차려라.' 하시는 말씀은 그 동안 가르쳐 주신 실상을 잃어 버릴 것 같아 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상을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이 염불선 입니다. 저는 생각이 날때마다 수시로 관세음보살의 원력과 거룩함을 찬탄하면서 관세음보살님 의 가피로 성취 되기를 발원 합니다.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고 있읍니다. 무엇이 대다라니를 독송하고 있는지 하는 의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어느 날은 다라니를 독송하면서 몸과 마음도 가볍고 머리도 맑으며 지루한 느낌도 없고 상쾌하여 기분이 좋읍니다. 특히 미국사회는 기다림이 일상화 되여 있어 어느 장소에서나 기다리는 동안 다라니를 몇번 염을 하면 지루하지 않고 원했던 일을 마칠수가 있읍니다.
또 어떤 날은 몸도 무겁고 번뇌망상이 가득하여 하는둥 마는둥하며 지루하게 끝마치고 허탈한 때도 있읍니다. 그건 간절함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읍니다. 그래도 불교대학 법우들과 함께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기쁨입니다.
제가 관세음보살님을 염불하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로 변경한 것은 예전부터 해 온 습관인지 아니면 주위에서 많은 보살님들이 정성을 다해 늘 그렇게 해왔듯이 관세음보살님 이렇게 해주십시요. 저렇게 해주세요. 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또한 나를 다시보며 내가 필요하고 간절해서 소원성취를 위해 관세음보살님을 찾고는 있지만 세상 모든 것의 실상인 진공모유를 공부하는 저와 법우들은 다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할 뿐" 속에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 녹아 내려 있읍니다.
어느날 지암스님께서 법문 중에 우리 보현사 불자들은 무게 중심을 소원을 비는 것에서 서원과 발원을 해야지 대동 세상 너와 나 모두를 위한 행복이라는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읍니다. 그래서 같은 뜻이지만 그 동안 소원을 빌며 부르던 '관세음보살' 보다는 삼독을 없애고 지혜자비를 성취하는 내용인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내 불자로서의 신행 길인 서원에 구체적인 것 같아 변경을 하게 되였읍니다.
꼭 미혹으로 타오르는 삼독의 불을 다 꺼트리고 지혜 자비의 빛이 되겠읍니다.
#*이지연
불법승 삼보, 염불 염법 염승에 대한 생각과 실천은 불교 대학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교 대학 이전에는 생각 날때마다 우후죽순으로 경을 읽거나 108배 참회기도를 하거나 절에 가면 경을 읽고 스님 법문을 듣곤 했습니다. 불교 대학 이후에는 공부를 하거나 숙제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염불을 정해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불법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훨씬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알아차림을 실천하려고 하고 부터는 갑자기 불거져 나오는 화나 원망 등이 생길때마다 나무아미 타불을 외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러한 마음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이를 풀어 낼것인지 등을 수업에 배운 교리들을 통해 해석해보고 마음을 차분히 하고 화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원래 화가 많은 성격은 아니었으나 화가 많은 1인과 몇년을 살다보니 물이 들어 화를 내는 일이 잦아져 덕분에(?) 요즘은 더욱 더 불법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곱씹으면서 나를 바로 세울수 있고 마음이 더 가벼워지는걸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줌 수업을 도입해주신 불대학장님, 장비 세팅하느라 늘 수고하시는 우리 법우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20여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불교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 다니던 절의 스님께서 울지 말고 49일동안 절에 와서 기도를 하라 하신 것이 절에 다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 불교는 기복신앙이기 보다는 힘들때 의지 하고 많은 이해되지 않는 세상 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부터는 부처님께 바라는게(?) 점저 더 많아지게 됩니다. 아이가 건강하고 무탈하도록, 내가 건강하도록, 직장을 오래 잘 다닐 수 있도록, 아들도 불교를 가까이 하고 맘편하게 살도록…. 이제 좋을때나 힘들때나 부처님을 부르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불대를 계속 하면서 불법을 더 심도있게 배우고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녹야원(이경희)
일요 법회에 스님께서 핵심과 디테일을 말씀해주셔서 다시 한번 생각 해보고… 저의 신심과 불연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전 참선을 먼저 접하고 불법에 관해 공부한 케이스라.. 신심의 중요성을 나중에 알게된 불자인데요. 불자라고 자신있게 말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듯 싶습니다. 그만큼 무지하고 교만한 마음이 꽉 차 있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본질…즉 제 마음을 제대로 보질 못 해 참선을 하나 어떤 기도를 하나.. 모두 껍데기.. 수행(?) 이였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교만이 치성한 어느날.. 참선 반 어느 보살님께서 기도하면 좋다고 해서 기도하는 법도 모르고 그냥 천수경과 다라니 독송을 하게 되었는데… 저의 첫 기도 제목은 “선지식을 만나게 해주세요”였습니다. 물론 선지식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ㅋㅋ 그냥 있어보이려고 했나? ㅋㅋ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데.. 그렇게 20대에 그 당시 볍련사 선원장 스님과 가깝게 인연이 되고 이런저런 봉사도 하면서 술을 그렇게 마시고 놀면서도 일주일에 두번의 참선반은 안빠지고 잘 다녔던게 제 신심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결혼을 해서도 저의 인연 복에 따라 우리 절 보현사 선원장 스님도 만나서 정법에 대해 더욱 확고한 믿음과 불자로서 신심이 더 돈독해 졌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제일 큰 감사 인연은 왜 신심이 중요한지 진짜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 처럼… 그런데도 이렇게 교만과 아집이 확~~~! 놓아지진 않는 걸 보면 아직도 멀긴하지만요. 이렇게 큰 틀안애서 부처님과 불법에 대해 놓치 않고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승보… 사실 우리 선원장 스님과의 인연에 대해 감사함을 말하고 싶은데요. 전 참 눈물도 없고 이성(?)적인 인간이였는데… 작년과 올해 기도 하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스님 생각하면 눈물도 잘 나요… ^^;
저 같이 감성이 아주 떨어지는 인간도 기도 하면서 진심으로 상대방에 대해 동화도 잘 되고 이심전심이 무엇인지 진짜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몇 번이고 스님 뒤에서 기도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던거 같아요. 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고 최고의 희열입니다. 전 기도할 때 “부처님, 늘 좋은 인연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하는데요. 인연법의 중요함을 놓지 말고 늘 감사하며 회향 잘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작게 나마 불법승 삼보에 살고 있는 저는.. 사실 크게 두려운 것도 불안한 것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 공부도 하고 취직도 하고 할 때도 제 능력에 대해 답답한게 있었지만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초조해 하진 않았습니다.
요즘은 하루 일과 중 환자를 볼 때 속으로 기도를 해주거나 운전 할 때, 눈뜨고 감을 때 가능한 화두를 들거나 염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백련화(권혜정)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108배 참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300배, 600배 기도와 진언 기도를 하며 저만의 기도 루틴을 만들어갔습니다. 이 시점에서 염불은 불보살의 이름을 외우며 마음의 위안을 찾는 중요한 실천이었습니다.
셋째가 두 돌이 지나면서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천수경 CD를 통해 제 수행은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한자로 된 경전을 뜻도 모르고 읽기만 했으나, 천수경 CD를 통해 경전의 내용을 알게 되었고, 그 가르침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천수경을 들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점점 가까워졌고, 단순한 기도를 넘어 경전 공부와 스님들의 법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과정은 염법의 시작을 의미하며,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혼자서 21일 기도를 반복하던 중, 절에서 지암 스님께서 이끄시는 100일 기도에 동참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기도의 반복을 넘어서 염승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스님께서 보여주신 모범과 가르침을 통해 기도와 수행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로 꾸준히 100일 기도에 참여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곁에 계셨기에 제가 보고 배울 수 있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공부가 훨~씬 더뎠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저는 의식적으로 광명진언을 염불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어서 능엄신주 기도와 반야심경, 법성게를 독송합니다. 특별히 마음이 쓰일 때에는 기간을 정해두고 108배 참회 기도를 드립니다. 이 시간은 염불을 통해 불보살님의 에너지와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10분간 참선을 통해 하루를 준비합니다. 이 과정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을 되새기고 마음을 다잡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염법을 실천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 삶에 적용하는 중요한 시간이며,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광명진언을 염불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실천들은 기도를 넘어 더 깊은 수행으로 나아가는 제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 때, 예전에는 몇 번 이해시키려 하다가도 결국 화를 내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마음의 무거움을 남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염불과 염법을 실천하면서 제 감정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래. 그렇구나"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합니다. 일상에서 사람과 생각을 더 잘 다루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며, 제 생각이 법에 맞는지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치우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알아차리고, 법에 맞는 길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 마음이 가벼워지고, 제 수행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때때로 제 수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마음이 불안할 때는 더욱 염불에 집중하고 염법을 실천하며, 스님과의 100일 기도 경험을 통해 염승의 의미를 되새기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넘어서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여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일승법, 즉 모든 법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가르침과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이 바로 일승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각(김다한)
염불
저는 염불수행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일상 생활에서 염불을 아직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 방의 불단에 모셔놓은 부처님 사진을 하루에 몇 번씩 보며 우리 중생들에게 남겨주신,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상의 지혜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중생들을 만날때마다 항상 그들의 불성을 생각하며 부처님을 생각하며 대하려 노력합니다. 더 일찍 불교를 알았더라면 더 일찍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더 일찍 깨닿고, 업도 덜 만들고 그렇게 살았을텐데,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염법
저는 불자로써 항상 세상을 부처님이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대상의 무상함, 무아 무자성,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괴로움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괴로움이 있을때 마다, 또 제가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을 알아차릴때 그려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지금 부처님 법을 안만났더라면 제가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지금도 엉뚱한거에 집착하며 나와 남에게 고통을 만들며 살았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부처님 법을 만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염승
이 위에 제가 쓴것에 비추었을때, 이런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시면서 보살행을 몸서 보여주시는 스님들은 제 삶에 너무 소중합니다. 짧았지만 달라스 사는 동안 지암스님을 알게 된것은 제 인생에 큰 행운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암스님과맺게 된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더 지암스님을 더 오래 알고 가까이 지냈더라면 제가 많이 다른 사람이 됬을거라고 생각해서 아쉽습니다. 이렇게 외딴곳에서 불자들을 위해서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면 지암스님이 많이 힘드실꺼 같고 감사하면서도 걱정도 많이 됩니다. 수계 받을때 지암스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불, 법, 승은 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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