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火 菩薩十地 공부 중 칠불통게七佛通偈숙제 > 불교대학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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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火 菩薩十地 공부 중 칠불통게七佛通偈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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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24-07-16 15:16 조회4,379회 댓글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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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드립니다

#*과거 칠불통게七佛通偈 내용인
제악막작(諸惡莫作) :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중선봉행(衆善奉行):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위 게송을 살펴보고
1. 각자 자기의 관점으로 선과 악을 정의해 본 후
 
2. 각자 스스로의 인생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어떤 꾸밈이나 조작없이 적나라하게 살펴보아, 지난 날 내가 행한 선행들이 무엇이었는지 고찰해서 적어 봅시다.

세로토닌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또 한 주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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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백련화(권혜정)
선과 악은 신념에 따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과 도덕적 원칙에 따라 특정 행동이나 결정을 선이나 악으로 판단합니다. 문화가 다른 경우에도 이러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선으로 보이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악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유는 각자의 신념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제 생각은 점차 바뀌었습니다. 십이연기에서 배운 것처럼, 세상에는 이유 없는 일이 없고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일어납니다. 조건이 사라지면 그 결과도 사라지게 됩니다. 선과 악도 이러한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서 중선봉행은 중도를 지키며 선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쾌락이나 고행을 피하고, 균형 잡힌 삶을 통해 선을 실천하는 것이죠. 저는 일상에서 항상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주고, 이해와 배려를 통해 함께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합니다. 가족이나 친한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때는 감정을 자제하고 중재자로서 화해를 돕습니다. 혹시나 무심코 선동하거나 가스라이팅을 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합니다. 또한 사업을 하면서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윤리적이고 공정한 방법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_()_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자성화(신은영)
선과 악에 대한 정의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불교 대학의 숙제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여기서 생각하는 선업이란 괴로움을 없애는 행동과 말과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악업이란 괴로움을 만드는 행동과 말과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행하는 선행들을 육바라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시의 관점에서 여러 봉사 단체에 월기부를 하고 있으며, 절에도 힘 닿는 대로 재보시를 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려고 생각합니다. 정기적으로 봉사단체에 봉사활동을 나가려 노력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만 깨어있을때는 가능합니다. 부처님 말씀 한말씀이라도 더 듣고 읽은 사람으로써 여기서 어떤 말을 하는게 그에게 복이되고 덕이될지 말을 들으면서도 하면서도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지계의 관점애서 오계를 지키려고 노력하며, 더 나아가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환경에 대한 생각이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엄격하고 치열하게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턱도 없지만, 그래도 일회용 물병이라도 안쓰고, 일회용 제품사용을 줄이고, 휴지사용도 줄이고, 되도록이면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육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10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세상에 밥굶고 헐벗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고,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과 모든 사람이 평안하고 안락하기를 바랍니다. 계를 지키는 것이 다른 존재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것과 더불어 다른 존재의 쓸데없는 분별과 망상을 일으킴으로 인한 과보를 면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욕의 관점에서 남에게 비난이나 불평을 들었을때, 전에는 화가 나고 그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아 그 사람은 이렇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겠구나 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만드려고 노력합니다. 돌아보고 미안한 말과 행동을 했을땐 빨리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때는 인연이 아직 아니구나 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려고 노력합니다. 

정진의 관점에서 되도록 많은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합니다. 핸드폰 배경화면에도 알아차리리고 써보기도 하고, 자고 일어날때 화두챙기기, 짬짬이 시간 될때마다 10분간만이라도 가만이 앉아서 참선하기를 합니다. 뭔가가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면 바로 ‘이뭣고’로 생각을 돌립니다. 

선정의 관점에서 예전에 비해 환전, 확연히, 감정의 기복이 줄었습니다. 항상 평정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감정의 요동침이 줄고 평안한 마음으로 지내는 순간이 대부분입니다. 참선을 하는 동안 완전한 선정에 들은 적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제겐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깊은 선정에 들고 싶은게 큰 바람입니다. 

지혜의 관점에서는 아직 지혜가 다 열리진 않았지만, 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경을 읽고, 스님의 말씀을 듣고, 인터넷에서 또 좋은 강의들을 찾이보고 항상 지혜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선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주 미미하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확철대오하는 날까지 퇴보하지 않고 지혜를 닦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선업말고도 무수한 악업을 짓고 있는지라 선업만 쓰는 것이 부끄러운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선업이 선업이고 악업이 악업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업도 악업도 다 과보가 있음을 알고 그 업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요. 내가 괴롭다면 내가 괴로움에 대한 원인을 지었음을 지금은 잘 압니다. 악업을 짓더라도 그 업에 대한 과보를 받을 각오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원산(안학선)
숙제를 올립니다.

선: 모두들 이롭고 행복하게 하는것.
악: 모두들 괴롭고 불행하게도 하는것. 

선의 의미: 팔정도, 자리이타, 서원, 행복, 기쁨, 배려, 성실,양심,등등
선은 긍정적인 행동을 나타내며 타인에게 도덕적인 유익한 행동 행위를 보여주며 관용과 진실과 정의를 보여 줍니다.

악의 의미:희론,탐진치, 괴로움, 시기,질투,십악,
시기, 질투,성냄, 등등.
악은 부정적인 행동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비도덕적인 행동과 행위를 보입니다. 이렇한 선과 악의 의미는 각자의 문화, 종교, 철학, 등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으며 또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어떠한 행동이 A 사람에게는 선으로 보일 수 있지만 B,C,D, 사람에게는 악으로 인식될 수도 있읍니다. 따라서 선과 악은 상대적이며, 각자의 가치관과 앞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읍니다. 마음이 수시로 변하는 것은 선과 악이 공존하여 상황 조건 여건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대학에서의 강의 시간에 교수가 칠판에 선과 악이라 써 놓고 강의를 시작했다 합니다.
어떤 부부가 유람선 여행을 하던 중 지중해를 지나다 큰 폭풍우로 해난 사고를 당합니다. 그런데 그 배에 비치돼 있는 구조정에는 자리가 하나 밖에 없었다. 이때 남편은 침몰한 배에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정에 올랐고 부인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 떠나는 남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부인은 남편을 향해 무슨 소리를 질렀을까요? 

얘기를 듣던 학생들은 모두 흥분과 격분으로 여기저기 떠들며 대답을  했다.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을 남편으로 선택한 내 눈이삐었지! 어디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는지 두고봐라. 하는 등 남편을 마구 욕하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이때 교수의 눈에 한 학생이 한 마디도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학생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 학생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이 뛰어 나왔다. 교수님, 제가 생각했을때  부인은 아마 우리 아이들 잘 키워달라며 울부짖었을 것 같아요. 교수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이 얘기를 어디서 들어봤니?
학생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어릴 때  저의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에요. 교수님은 그 학생의 말에 감동을 하며 다시 교단에 서서 말했다. " 정답이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져 나갔다. 배가 침몰한 뒤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자녀 둘을 잘 키웠고 그 남편도 몇년후 병으로 죽었다. 그 자녀들이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아빠와 엄마가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때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폐암 말기로 아빠와 함께 세상을 떠날 마지막 위로 여행 중 이었다. 그 때 마침 큰 폭풍우를  만나 사고가 발생했고 아빠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 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보' 미안하오. 그때  당신이 나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지를 않았더라면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다 속에 빠져 죽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럴 수 가 없었소.
우리들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당신만 깊고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게 할 수 밖에 없었소. 천국에서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만을 고대하며 당신 몫까지 아이들을 잘 키우겠소.
교수가 이야기를 끝내자 그렇게도 흥분하며 떠들던 학생들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교실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겁고 숙연한 교실 분위기 속에 학생들도 이미 이야기가 무엇을 뜻 하는지를 깨달았다는 것을 교수도 알고 있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선과 악의 상태를 가볍게 판단해서 최종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는 숨어 있는 깊 은 뜻은 모른채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선과 악을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다움, 선과 악의 본질)

선행
달라스에는 Stemmons fwy(35E)와  Royal Lane 교차점 에는 어느때보다 부터 인지는 모르겠으나 노숙자들(homelessness)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 하더니 지금은 여기저기 많은 노숙자들이 보입니다. 평소에 늘 그랬듯이 스쳐 지나가고 어떤날은 주머니에서 몇푼 안되지만 그것을거네주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출근길 신호등에 걸려 기다리는 중 차창 넘어에 두 다리가 없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노숙자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 츠근하게보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보니 현금은 없고 카드만 들어 있어 조금은 당황 스러워 할때  신호등이 바뀌어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노숙자는 나의 행동에 기대를 하며 바라보는 눈빛이 아련 하기만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날은 아쉬운 마음이  계속 머리속에 남아 그 간절한  눈빛이 문득문득 생각이 나면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그를 보려 같은 장소에서 보니 그는 없었다. 다른 노숙자에게 작은 돈을 건넸을때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하느님의 은총을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니 나 또한 가슴이 뿌듯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생각을해 보았다. 나에게는 얼마 되지않는 몇푼의 푼돈 이지만 그들 노숙자들 에게는 백도를 넘나드는 달라스의 뜨거운 더위에 힘겨운 하루를 견디며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수도 있겠구나. 

그날부터 저의차 본넷트 커버 밑 에는 지폐 $1 & $5 을 항상 준비하여 그들을 만날때 마다 전해줍니다.
혹자는 왜 노숙자에게 돈을 주느냐 일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데 오히려 더 게을러져서 무능해 진다고 하는데
나의 생각은 달랐읍니다. 능력과 무능력을 떠나서 지금 현재 저기서 구걸하는 사람들 보다 내가 좋은 환경과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그들 에게는 희망과 빛이 될수 있어 나름대로 행복을 느껴 봅니다. 가끔씩 전에 백일기도를 열심히 할때 조석으로 하던 기도문이 생각이 납니다.

" 내가 안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연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하는 것 처럼 모든 존재들이 연락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보각(김다한)
이번 숙제는 따로 공부하고 적은것은 아니나, 저에게 받아들여진 선과 악을 써봅니다. 저에게 악은 이기심으로 생각이 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걸 얻기 위해 남에게 어떤 고통이 가는지 생각을 하지 않는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선은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점에서 다른 중생이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행복을 얻어 좋아하기를 바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변치 않는 절대적인 행복을 언젠가는 얻기 바라는 마음을 선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악도 많이 행하지 않으면서도 선도 딱히 행하지 않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행한 선을 생각해보려고 해도 머리속에 조금한거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그냥 일하면서 다른 사람이 모르면 시간 써서 설명해 주는거, 달라스 살때 노숙자들 몇 번 밥 사준거, 동네 아이들 바쁜일 있더라도 친구해준거, 뭐 이정도밖에 생각이 안납니다. 아직까지는 제 마음 챙기는데만 신경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끄럽지만 앞으로 모든 중생들을 볼때마다 보시할수 있는 대상, 기회로 삼으려고 하겠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서연화(이승연)
선과 악의 정의를 여러 관점에서 볼수 있겠지만..저는 옮고 그르다라는 점이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물론 부처님께서 짓지 말라고 하신 오계율을 어기는 것은 옮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한 행동을 한적은 저자신을 사랑함에서 출발하였고, 상대를 한 자율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며,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존재들을 측은지심으로 받아들이며 상대에게 이해하고 베푸는 마음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은 악으로 보여도 계속 악일수 없고 선으로 보여도 모든 면이 선일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베풀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진심으로 순간순간 대하면, 그 인과로 인해 각자의 소우주 안에서 선함을 서로 더욱 격려할수 있고 악함을 뒤돌아볼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신뿐아니라 상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수 있는 제 순간의 행동이 인과를 통해 퍼져 나갈수 있다면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때로는 가족들에게, 친구와 지인들에게 인생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바른 길로 나아갈수 있도록 서로 부단히 진심 격려하는 의지가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시도하고, 봉사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포함하는 모든 존재에게 적극적이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응원해주는 마음이 선이라 생각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보장화(김경희)
보장화 숙제 올립니다. 
선과 악의 개념은 시대에따라 나라마다 종교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개념이 바뀌어왔습니다. 그러고보면, 일반 대중의 선악에는 거기조차 주류의 욕심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릴때엔 검증되지않은 어른들의 말 잘듣고, 순종하고, 심하게 겸손해야하고, 양보해야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참고 괜찮은척 하는게 선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춘기 시절 반항끼가 생길무렵에 차가 많이 안다니는 사이 도로였는데, 젊은경찰이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건너는것을 보고 나와 친구가 따라 건넜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이 우리를 불러세워 무단횡단을 했다고 주의를 주길래, 경찰아저씨가 먼저 건너셨다고 말을 했더니, 자기 합리화하는 말을 했던것으로 추억이 떠오르네요.^^ 그 때 그 경찰도 나도 그 상황에서 마음을 그렇게 일으켰고, 경찰쪽에 무게감을 갖고, 우리는 깨갱 수준의 입장을 주고 받은겁니다. 육도 윤회의 세계의 약육강식이란 법칙이 함께 작용한 서로의 잘잘못을 따진거라 생각합니다. 천수경의 "죄의 자성 본래없어 마음따라 생기나니"가 생각남니다. 선도 악도 자성은 없으나, 그때 그 상황에서 일으킨 맘으로 선도짓고 악도 짓는데, 선에 비중을 두는 생활을 하다보면 선을 더 많이짓는 맘을 내게되는 것이니, 4정근을 명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제가 선이라 생각하고 있는것은.
  첫째. 5계를 지키고, 10불선업계에 짓지 않는것 입니다. 살생, 도둑질,사음,거짓말, 꾸밈말,이간질,욕설, 욕심(탐), 노여움(진), 어리석음(치)을 짓지 않는 것 입니다. 생활하면서 조심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무심히 짓게되는 것들이어서 잘 알아차리지 않으면, 사실을 왜곡하여 연쇄적으로 다른 악을 짓기가 쉽상인 것 같습니다. 삼가 조심해서 선업의 행을 가야할것 입니다.
   둘째는 어떤 행위를 할때 의도 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나이스해도 속으로 상대를 골탕먹일 생각을하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 생각합니다.이것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다른이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수가 있지만 나 자신은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에 대한 바른 알아차림을 하지 않으면 악을 짓고나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각색하여 자신의 뇌를 속이기도하고 합리화도 하지만 역시 인과의 법칙에선 벗어날수 없으리라 봅니다.  물론 항상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하지만, 선한 의도는 정말 중요하고, 의도가 선하면 진정한 수희찬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한의도가 커져서 자비로움으로 화했을때 비로소 착한 거짓말도, 꿈밈말도 필요 없을것 같습니다. 왜? 하는 말에 자비의 맘이 담겨있으니 말을 듣는 사람도 그 맘을 전달 받을것 같기 때문입니다. 전달 안되더라도 당장은 좋지 않아도 결국은 좋은 결과로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셋째 이타심의 마음입니다. 다른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다른 사람도 내가 원하는 걸 똑같이 원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가 상대의 좋은 인이되어 주면 좋은 연으로 맺게되고, 이것이 연쇄적으로 선순환으로 이어질 겁니다.
  4. 불법을 배우고, 보살행을 실천하는것이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완성이되면 지극한 선, 절대 선의 경지에 서있게 될겁니다.
  저의 개인적인 선행이라면, 어떤행을 하는데 의도와 십악업이 조금씩 순화되고, 신심이 커가고 있다는 것 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재보시나 몸보시나 절과 관련된 것 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일부러 불교와 불교국가들을 찿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티벳의 춥고 배곱은 열악한 환경을 직접 보고는  그쪽에 사건사고가  맘에 키고, 그랬던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먹을게, 입을게 부족해도 티벳이나 미얀마등등 동남아 불교 국가을 보면 부처님의 법당은 가장 좋았고 그들의 신심 또한 굳건함을 보고 그들이 행복하고 부처님 법에 대한 신심이 한결 같기 바랬던것 같습니다. 
나의 일상에선 더럽고 정신도 온전치 못한 거지님들께서 가게를 방문하여 더구나 뻣뻣이 굴면 그것 보는게 부화도 나고, 가게에 빈자리가 많아도 그들이 자리를 메꾸는게 싫고 하는 나를 보면서 문수보살님이 내 앞에 화현하신데도, 친견 못하겠구나를 느낌니다. 
아직은 지혜의 힘도 자비의 힘도 미약해서, 때에 당해 맘씀이 불완전하여, 선, 악을 번갈아 짓게됩니다. 하지만, 선인 선과를 믿기에 있는 선함은 지키고, 없는 선한 맘을 내려고 노력하고, 앞으로 더 더 선해지리라  다짐해 봅니다.
옴살바못자모지사다야사바하_()_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녹야원(이경희)
1.   악: 자만, 무지, 게으름
선: 하심, 정진하고 기도해서 깨어있기가 잘 되면 사소하게 놓치는걸 많이 방지 할 수 있음

2.   제가 내린 정의에 비춰서 저의 선행을 살펴 보자면, 저의 자만이 수그러들었을 때 비로소 상대방의 기쁨도 진심으로 기뻐하게 되고 슬픔도 진심으로 슬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심도 저 같은 경우엔 삼천배, 천팔십배를 한다고 해서 생기진 않았습니다. 기도를 통해 신심이 더 돈독해 질 때 더 깨어있게 되고 측은지심도 일어나게 되고… 그게 측은지심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사실 저는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오랜(?)세월 살았는데, 얼마전에야, 감정을 돌이켜 볼 생각을 안 하고 한쪽을 막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우님들의 숙제를 읽어 보면서 더 배우고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채워 갈 수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다들 제게 선행 잘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능현(최수곤)
능현 숙제 올립니다.

선(善)과 악(惡)에 대한 구분은 어떻게 하는 것 일까? 착하다 나쁘다의 구분은 가정에서의 교육, 사회 규범 등을 통해 굳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라면서 어떤 행위가 선이고 악인 것을 우리는 배웁니다. 따라서 선이란 착한 것,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 사회 규범에 어긋 나지 않는 것으로 정의 할 수 있고 악이란 이와 반대로 나쁜 것,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일정한 규범에 벗어 나는 것 으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의 선(善)과 악(惡)도 비슷 하리라 여겨 집니다. 
선행자인 부처님을 따르고 교리에 어긋남이 없는 행동, 더 나아가 중생을 이롭게 하고 가엾이 여기는 행동 이를 선(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불교의 선행은 공덕(功德)을 행하는 것 즉, 좋은 일을 쌓는 것과 불도를 수행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악(惡)이란 말, 행동, 뜻으로 지은 좋지 못한 행위를 악(십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악 : 살생,투도,사음,망어,양설,악구,기어,탐욕,진에,부정견

반평생을 살면서 여러가지 선과 악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다른 이를 도운 일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이때 진정으로 내가 아닌 이타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도우지는 않은 듯 합니다. 한쪽 편에는 나의 이익을 생각하고 도운 것도 있으며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 처럼 선행의 과보를 생각치 않고 남을 도운 것은 없는 듯 합니다. 그저 선행을 통해 내 마음이 편해 지라고 행한 것이 대부분인 듯 합니다. 악 또한 거침없이 한듯 합니다.
여러 행을 함에 있어 알아차려서 불자의 입장에서 행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자연성(강은아)
< 제악막작 중선봉행 >
1. 스님께서 질문으로 선이란? 
1초 2초...선은 남을 도와줌, 착한 일. 
악은? 남을 해롭게함, 나쁜 일. 
요렇게 단순하게 대답을 했을 겁니다.^^

일요법회때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저도 자비참법기도(불자오계, 천수경)에 나오는 10선, 10악을 보며
몸(살생,투도,사음)으로 짓는 세가지,
입(기어,망어,양설,악구)으로 짓는 네가지,
뜻(탐,진,치)으로 짓는 세가지, 
신구의 삼업으로 선을 지을 수도, 악을 지을 수도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10가지 악을 짓지 않는다고 선이 되지는 않고 선은 의지를 갖고 행해야 선이 됩니다)
삼업을 기준으로 천상, 해탈, 열반의 길로 가면 선행을 닦고 있는 것이고, 삼악도의 길로 가면 악을 짓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저의 인생을 돌아보니 
무수한 세월을(50년) 살았는데^^ 
선행을 했다고 기억에 남는 게 몇 가지 없습니다.
악업은 선행과 더불어 일어나고, 신구의 삼업에 대입을 하니 악업이~~~탐진치로 인해 뜻으로 행으로 입으로 죄업을 많이도 지었습니다 ㅠ.ㅠ
참회진언 들어갑니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어릴 때는 인사를 잘하고 식사예절도 잘 지켜서 친척들이나 어른들께 '착하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고, 커서는 친척집이든 절에서든 일이 있으면 설겆이나 뒷정리등 뭐든 도울라고 했으니 선행을 하였습니다. 
-> 선행을 하였지만 아버지 교육으로 안 하면 혼나니 억지로 한 선행이 많았음 

*초등학교때 같은 반에 체구도 작고 무슨 병이 있는지 입과 손이 마귀손 같으면서 껍질이 벗겨지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짝을 지어 율동을 하는데 그 여자애가 짝이 없길래 안된 마음에 손을 잡고 같이 율동을 하였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하였지만 막상 손을 잡으니 손이 딱딱하고 이상해서 나한테 옮기는 건 아닌지 내 손도 저리되면 어쩌나...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겉은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수업이 끝나고는 수돗가로 가서 비누로 손을 몇 번이나 씻었는지 모릅니다.
-> 선과 악(위선,이기심)이 같이 일어남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 애들에게 책을 읽혀주자"~는 사기꾼 학생에게 당할 때 선한 마음이였는데 책납부용지를 들고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혼나고 출판사로 전화하고 나서야 사기당한 걸 알고 후회했습니다.
-> 선과 치(어리석음)가 같이 일어남 

*한국 절에 다닐 때 대중스님들께 가끔씩 알바비로 간식공양 올리고, 
후원에서 설겆이 도와드리고, 
4분정근하는 기도스님이 2시 예불 들어가면 졸지 않고 기도 잘하시라고 같이 기도에 참석하기도 하고,
나와 인연되어진 스님들이 모두 성불하시길 발원하고...
-> 절에서 행한 선이 그나마 중선봉행의 선을 실천한 듯 합니다. 

*선행을 돌아보니 나의 탐진치, 이기심을 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게으름에 귀찮음에 "좋은게 좋은 거야"하며 선인 것처럼 하기도 하고, 내가 정해 놓은 선악의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이 모호할 때가 많았습니다. 

*남을 살리려 적극 노력하고,
보시를 하고 남에게 베풀고, 
청정하게 정절을 지키고,
상대방에게 고운말, 정직한 말, 격려, 진실한 말을 하고, 남을 도와주고...
이게 다 나를 위한 건데 과연 선이라 할 수 있는지???

온전한 선행은 무주상일 때, 바라밀일 때 되는 것임을 이번 숙제로 각인이 되었습니다. 

*소싯적에 사람들이 쫌 좋아해줬다고 나 잘난 줄 알고, 난 나야, 잘난척, 교만, 다혈질, 이기적, 부정적, 인색함이 '나'였는데 지암스님을 만나고 억지로 되든 안 되든 수행을 하다보니 삼악도로 가는 악업에서 점차 선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자비참법기도가 힘들고,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힘든 와중에 타성에 젖어 대충할 때도 있는데, 이번 같은 '선행' 숙제가 나오면 악업 지은 게 같이 떠올라 다시금 기도를 할 때 한 번이라도 진참회를 하니 기도, 독경, 참선, 알아차리기...수행이 나의 제악막작 중선봉행의 길임을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기심, 인색함, 분별심, 교만, 게으름...여전히 선을 장애하는 악업이 나오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가벼워졌고 악업이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알아차리고 관세음보살() 

석가모니 부처님, 불보살님, 화엄성중님들께 
늘 감사드리고, 스님, 덕현, 가족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드리며,
모두들 부처님 정법안에서 안심입명하기를 발원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이지연 
 이게 다 나를 위한 일인데 선이라 할 수 있을지… 저도 같은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이지연
이지연 숙제 올립니다

저도 불법/업 프레임안에서 선과 악을 생각하지 못했고 나름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살인과 같은 극당적인 악이나 철저한 이타주의에 바탕한 선보다는 나와 더 가까운, 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악과 선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도 보각 법우님과 같은 생각인데 결국 악과 선을 구분하는 것은 이기심 혹은 아집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나쁜 말을 하거나, 선입견을 갖고 누군가를 혹은 어떤 상황을 판단하거나, 남보다 더 나은 것을 취하려 하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을 꼭 취하려는 것이나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선이 아닌 행동의 근본에는 남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다름을 그릇됨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선행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느낀것은 내가 선행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남을 해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선의 실천이었을 뿐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는 선행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좀 나빠도 말을 아껴 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나 기회가 되어 물질이든 재능이든 무언가를 나누는 일,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하는 일 등도 악한행동보다는 낫지만 적극적으로 남이나 세상에 도움이 되는 행동(선행)이라고 보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좀 더 선행에 대해 저 나름의 정의를 정립하고 실천할 수 있는 선행이 어떤것이 있는지 찾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정진(김효성)
정진 숙제 올립니다. 
선과 악의 의미는, 나이가 들어가며, 삶의 환경이 변하면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것 같습니다.
나이 들며 저절로 바뀌는건 아니고, 긴 세월 모진 구석이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다듬어지면서 선과 악의 의미도 함께 깨닫게 됩니다.
가장높은선은 물과 같다는 선사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살지만 탐진치에 걸려 넘어지는 삶의 연속입니다.
  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과 혹은 어떤 것과도 충돌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 내 앞길을 가로 막는다면 돌아가면 되는것이고, 넘지 못할것 같으면 조금 쉬어 가겠습니다.  인연이 아닌것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않는것 또한 물과 같지 않겠는지요.. 

악은 집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것이라 집착하여 나누지 못하고 인색하였다는것을 숙제를 하면서 깨닫습니다.
탐진치 모두가 악의 뿌리이지만..집착이라는 단어로 쉽게 표현 되는것 같습니다.
집착과 함께 시간을 허비하는것은 저의 가장 큰 악행입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시아원(한희주)
시아원 숙제 올립니다 


저의 주관적인 악의 기준은 현재를 살고 있는 시점에서 남의 몸을 해하거나,  독한 말로 남의 마음을 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아프게 하고 마음을 병들게 만드는 것
특히  몸을 죽이는 살인이나, 마음을  죽이는 사기 등은 아주 나쁜 악이라 생각합니다.        
뉴스에서 보는 크나큰 악은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게 되지만,
소소한 작은 악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짓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김니다.

예전에는 "나쁘게 살지말고 착하게 살자!" 가 저의 기본 의식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불경을 읽다 생각해보니, 착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인간의 몸 받아 온길에 이왕이면 남을 위해 선행을 하며 사는것
이 더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심을 본받아, 
콩 한쪽이라 있으면 남을 위해 나누는 행동을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지난날의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보고 어떤 선행을 하였나? 라고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행한 소소한 선행 중에 가장 오랜기간 동안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23살 때 부터 시작한 국제기아대책본부
의 기아아동 1"1결연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우리 가족 명수와 같게 4명의 아프라카어린이 인도 어린이에게 1:1기부를 매달 하고 있습니다.  
큰 기부금은 아니지만, 제가
보낸 작은 돈이  그아이에게 책이되고, 밥이 되어, 바르게 자랄 수 있는 희망이 된다는 것에 큰 기쁨을 제가 얻고 있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성월심(정은주)
성월심 숙제 올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불교 관점에서의 악은
• 자신과 또 남에게 번뇌를 일으키고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게 하여 선업 
짓는 것을 방해하고 정진하는 것을 
방해하는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하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불교 관점에서의 선은
올바른 행동은 올바른 마음 가짐
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기
에 신구의 삼업을 맑히고 청정케
하는
우선 부처님 가르침인 삼귀의. 불자 
오계.십선계를 잘 지키고 잘 지키게
하는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하는 행위
를 말합니다


{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이며

정치가인 백낙천이 조과선사를 찾아와 

"스님 제게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법문을 들려 주십시요."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하면 이것이 곧 부처의 가르침이다."

굉장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실망하면서

"그거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알기야 삼척 동자도 다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지."}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이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 위의 글은 지난주 수업 시간에 
스님께서 말씀하신
 <조과 선사와 백낙천시인>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따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매년 <부처님 출가재일>에 하는
[수계의식] 때 불자오계. 십선계를 
저는 2016년 부터 지암 스님으로 
부터 5-6번 정도 받은 것 같습니다.

이유는 2016년 첫 보현사에 나오
면서 [불자 오계.십선계]를 받으면
서 이중에 하나. 둘이라도 제대로 
실천해야 겠다고 다짐을 했고
공부하면서 또 해가 바뀌면서
탐진치 삼독도 조금씩 줄어들고
또 새롭게 마음을 잡고 계 지키며
의식도 좀더 확장되어 가고

남도 생각하게 되고 도움을 주고
나누려는 행위도 좀더 적극적으
로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이 연로하신 환자
분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라는 말보다 등한번 쓸어드리고
어깨 다리 만저 드리고 좋아하
시는것 사가지고 가서 같이 먹으
며 요사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아가며 고민 덜어 드리는 것

너무나 많은 버려지는 쓰레기에 
입을 다물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냉장고에 빈공간을 넓여가고
있습니다.한번에 스캔이 되도록
환경 문제가 너무 심각합니다

남한테 뽀족한 말 하지 않는것

용기주고 격려하고 상대에게 
닥친 어려움 외면 하지 않는것

부처님께 공양올릴때 불단하고 
도량 청소한후 공양 올리는 것은 
예전부터 하던 습관인데
그 덕분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해 오지 않았나 생각하며
늘 부처님의 가피를 많이 받았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법에 눈을 뜨는 행위에
힘을 실으려 합니다.
모든것이 인연연기라 정진하고
선업을 좀더 적극적으로 짓도록
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일요 법회 : 매주 일요일 오전 10:30 AM
선방 모임 : 매주 수요일 저녁 7:00 PM
불교 대학 : 매주 화요일 저녁 7:00 PM부터
1130 Abrams Rd, Richardson, TX 75081     Tel : 972.238.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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