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火. 첫 숙제 - 갈애 > 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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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火. 첫 숙제 - 갈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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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24-05-23 16:11 조회5,537회 댓글14건

본문

"생사윤회하는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 초전법륜경 외 무수 경전

불교에서 존재의 씨앗, 윤회의 씨앗, 괴로움의 씨앗으로 정의되는 갈애(渴愛)에 대하여 정의해보고, 불대 수강 법우님들은 각자에에 가장 집요하고 비중이 크다고 느끼는 갈애가 무엇인지 찬찬히 잘 살펴보고 진솔하게 드러내 설명해 봅시다 !

댓글목록

자성화님의 댓글

자성화 작성일
갈애란, 말 그대로 목이 마른데 물을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가 부족함을 느끼고 그걸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채워도 채워도 만족스럽지 않는…. 꼭 밑빠진 독에 불붓기 같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않는 느낌과 감정을 나타내는 말인 것 같습니다.

먹고 먹고 또 먹어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서 거의 집 밖에도 나가지도 못하는 사람을 TV 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집에 골통품 가게인지 쓰레기통인지 알 수 없게 물건을 주워 오기도 하고 물건을 사기도 해서 집안에 발디딜 틈도 없게 해 놓은 사람을 TV 에서 본 적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위해서 집안 가산을 다 탕진하기도 하고, 일확천금을 위해서 가산을 다 잃기도 하고, 돈 때문에 사람을 속이기도,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돈잃고 사람을 죽이고 하는 일은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 모든것이 갈애로 일어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내가 갈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사랑인 것 같습니다.  다른 것들은 크게 바라는 게 없는데, 사랑은 많이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도 명에도 아니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허구를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때부터 읽은 책이나 교육, 들은 얘기, 가족, 친구, 사회 등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기도 전에 난 그걸 가져야면 행복하다고 믿는 거죠. 다른 걸 다 가져도 그게 없으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세뇌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막상 가져보니 진정한 행복이라기 보다는 치열한 투쟁의 삶이었습니다. 물론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것에 못지 않은 갈등과 힘듦과 어려움와 슬픔과 아픔도 많았습니다. 가지가 많으면 바람잘날 없다는 말처럼, 인간관계가 많아질수록 챙길 것도 더 많고,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와 내 친척, 내 친구들만 있을때와 배우자와, 배우자의 가족, 친척, 그리고 자식들까지 생기면서 그만큼 내 인생도 더 복잡해지고 더 다사다난해지는 거죠. 그 가운데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더 많아지고 더 바빠지고… 

물론 혼자사는 이 세상은 아니지만, 결혼과 연애 사랑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사실또한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갈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있어야만 행복할 것 같다는 착각에 목이말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겪어야 아니라는 걸 알게 될지, 머리로는 한심하다 생각하고 착각이라 생각하면서도 또 사랑 타령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봅니다.  사랑이 있어도 편하고 없어도 편한 날이 곧 오기를 바라며 수행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집안에 물건이나 쓰레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 사람처럼 마음에 이런 저런 감정들과 팔만사천 가지가지의 업들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끌어안고 있어야 안정되고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말입니다. 남들이 볼때는 쓰레기인 줄 확연히 아는데, 내 감정과 딱 붙어있는 그것들을, 정작 내 자신은 쓰레기인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들만 치우면 훨씬 집안을 넓게, 위생적으로, 안전하게, 필요한 물건들 딱딱 쉽게 찾아가며 편안하게 쓸 수 있는데도 그것들이 없어질까 전전긍긍하며, 또 오히려 쓰레기를 더 끌어모으며 살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쓰레기를 쓰레기인 줄 알고 내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두고 심플한 라이프를 살고 싶습니다.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희망을 가지고 마음 알아차리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아무것도 없어도 편안하고, 아무것이 없어서 편안한 이치를 깨닫기를 바래봅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서연화 과제 올립니다

갈애가 무엇일까. 탐진치가 불러오는 욕망과 어떻게 다른말인가. 먼저 신병삼/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전문연구원의 불교신문에 기재된 글-[불교신문 2730호] 통해 의미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저한테는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이지만, '갈'에서 느껴지는 의미처럼 욕망의 강조된 표현인듯 보여졌습니다.

제게 가장 집요하고. 크게 느끼는 갈애는 '애정'에 대한 욕구인 것 같습니다. 꼭 남녀사이에 애정뿐이 아니라 친구들로 부터, 혹은 넓은범위의 사람들로 부터 사랑받고 싶어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욕구였습니다. 그것이 틀어지거나 문제가 생길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왜 그런것 같은지는 다른말로 하면 왜 그욕구를 놓지 못하는지가 아닐지 합니다. 

잡히지도 않을 욕구. 금새 꺼져버리고 멈추지도 못할 순간, 또 이것들이 번뇌와 괴로움을 동반하는걸 알면서도 문자 그대로 왜 갈구하고 있는지. 제 자신을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제가 놓지못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창피하게 고백하지만 즐겁고 고통의 시간이 지나간뒤, 마치 지나간 연애에 비유하면, 괴로움과 번뇌의 시간은 잘 기억이 안나고 즐겁고 짜릿했던 기억들이 추억처럼 남는것처럼, 욕구와 괴로움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둘째로는 이 욕구들이 다 채워지지 않아서 일까요.
셋째로는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이유였습니다. 욕망들이 번뇌를 동반함에도, 포기해야 하는 욕구들, 더 놀아보고 맛보고 싶은 욕망들, 감각적인 즐거움 그리고 감정에 대한 '아쉬움'이요. 욕망에 얽히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더 큰 즐거움이 있다는데..소탐대실하는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부처님같이', '확철대오'를 외치나 마음속으로 이 욕망들을 놓지 못하는, 아니 놓지 않으려하는 제 자신을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솔직하게는 욕망에 대한 집착이 들지않고, 부족함의 목마름이 채워질때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정성을 다해 보아서, 그것들을 느껴보고 괴로와도 보고 결국 덧없음 느끼고 싶습니다. 이것도 다가져보고 싶은 과욕인가요.

화엄경 공부를 통해 제 자신을 바로보려 해보고, 선지식 스님께서 이끌어주시고,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이 있고..이런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백련화 숙제 올립니다. 

저의 갈애에 대한 정의는 강하게 바라고(원하고) 또는 기뻐하고 만족스러운 마음. 반대로는 싫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두려워하는 마음. 그것에 애착을 두는 마음을 갈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고 만족을 주는지를 살펴보니 물질적인 것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먼저 나 안에 있는 나에게 인정받아야 행복한 것 같습니다. 
밖에서나 가정에서 생활할 때 잘하고 싶은 마음 인정 받고 싶은 마음 그렇지 못하게 되면 시도해 보지도 않으려는 마음. 급한 마음이 스트레스를 만들어 몸을 힘들게 하는…. 그 내가 무엇인지는 찾고 있습니다.  딱 그 ‘나’ 가 무엇인지를 찾아 보고 싶었을 때 다시 2학기를 하게 되어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능현 숙제 올립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끝이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의 갈증을 갈애라 말한다.  12 연기중 8번째 애(愛)이며 괴로움을 피하고 항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애가 강하여 극심한 애착이 발생하여 행동으로 옮겨 지면 취(取)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애와 취로 인해 유(有)가 생기며 존재인 결과를 잉태하게 된다. 이로써 생(生)이 형성되며 노사(老死)로 연결되어 윤회의 사슬이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살아오면서 인생 전반에 걸쳐 욕망이 매번 바뀌는 듯 합니다.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말년기 등에 따라 욕망의 대상이 바뀐듯 합니다. 소년기에는 학업과 성적, 친구에 대한 갈증, 청년기에는 좋은 직장과 결혼에 대한 갈증, 중년기에는 자녀 교육과 물질 금전적인 성취에 대한 갈증, 장년기에는 성공, 자녀의 미래, 안정적인 생활과 건강 등에 대한 갈증, 말년기는 아직 체험하지 않았지만 유추 해보면 아름다운 마무리와 건강한 삶 등에 대한 갈증 등일 것입니다. 

현재 중, 장년기인 저는 위에서 말한 여러 성취에 대한 갈증(자녀 교육/미래, 금전, 성공, 건강)을 추구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애착으로 이어져 실제 생활에서 희노애락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에 집착을 하고 그것에 대한 욕망의 채워진 정도에 따라 제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 삶이 이러한 욕망, 갈애로 덮여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것을 치유하고 진리에서 말씀하시는 윤회의 고리를 끊어 내고 해탈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은 머리속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 행동이 이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행위가 계속 된다면 윤회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듯 이러한 욕망(갈애)을 치유하는 방편에 대해 여쭙습니다. 중도의 삶을 통해 치우침이 없게 하여 삶의 평정을 가지는 것이 좋은지요? 아니면 애초 욕망이란 존재 자체를 가질수 없게 만드는 갈애의 소멸을 추구해하는 지요?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이지연 숙제 올립니다

이것저것 중구난방 읽으면서 조각조각 맞춰본 바에 의하면 갈애는 대략 탐욕, 이는 원하는 것(업에 따라 좋아하는 것)은 더욱 얻고자 하며 원하지 않는 것(업에 따라 싫어하는 것)은 더욱 피하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사실 탐욕, 집착이란 단어로만 갈애를 보았을때는 내 자신이 갈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늘 열심히 살지만 뭐든 정도를 넘어서 나와 타인을 망치면서 까지 무언가를 갈구하진 않았던거 같아 대답을 찾기가 쉽지 않던차에 뇌리를 스치는 하나, 아집, 나에 대한 집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제 생각이나 신념, 가치 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내 나름의 논리에 맞지 않거나 오롯히 나와 관련된 일(진로, 직장, 사소한 일상의 일들)이라면 내 뜻대로 결정을하고 일을 처리해왔습니다. 다행이 가족들은 의견이 잘 맞는 편이고 뜻이 맞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뜻을 맞추려 하기 보단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큰 문제 없이 살아왔으나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서 나의 아집이 여러 형태로 새로생긴 가족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된 듯 하고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은 들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더 불법에 불도에 기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 스님 법문중에 큰 그릇 작은 그릇 따지지 말고 그릇을 없애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모든것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저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 학기 동안 많이 배우고 열심히 생각해서 깨달음에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정진 숙제 올립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경계에 부딪치고(촉), 느낌(수)을 받을때 좋다고 느껴지면 갈에로 흐르고, 싫다고 느껴지면 부애가 난다고 하는것 같습니다. 
수를 잘 관찰하여서 알아차리면 애가 생기지 않으니 갈애도 없고 부애가 날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취 한바가 없으니 열매의 유가 없고 유의 다른 이름인 "인" 또한 없으니 생 노사 할것도 없다하니..
항상 알아차리고 깨어있는 수행이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저에게 집요하고 크게느껴지는 갈애는 무엇인지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탐진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오늘도 전화기의 구글 검색, 뉴스창을 열어보니 수많은 경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것저것 많이 살펴 보았습니다. 
어떤것에 갈애하고 어떤것을 취 해서 유의 열매를 맺었는지 다 알지도 못하고 하루가 지나갑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김다한
저는 갈애란 대상에서 연기적으로 드러나는 성질들의 공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일 끊지 못하는 집착은 여자이며, 그 이유는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는 아름다운 성질이 내재적으로 존재한다고 미혹되어 취하면 내가 행복해질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여자가 마음에 드는것을 알아차릴때 마다 위 내용을 숙고하고 명상하려고 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정명(박순홍)
갈애는 우리의 삶을 메마르고 황폐화 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탐욕스러운 행위를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번뇌의 바탕이 되고 윤회를 반복하게 하는 욕망의 총칭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12연기설의 가장 근본인 무명으로부터 발생되었고, 잘못된 고착이 집착이라는 것으로 발전되며  이로 인해 삶이 괴롭고 수행을 하며 이를 떨쳐 버리려 함은 우리로서는 간절하고 금생에 조금이라도 업을 녹이고 내생의 다른 태어남을 여는 것으로 인과의 중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갈애는  재, 색, 식, 명, 수 다섯가지 오욕으로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위를 육근 (안,  이, 비, 설, 신, 의)을 통해 걸림없이 받아들이며  끝없는 갈증을 느끼고 때론 일시적인 환희와 탐욕이  결코 멈추거나 쉬지 않는 집착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다 해당되겠지만 그 중에서도 "부"와 이를 위한 도전으로 "명"을 얻어야겠다는 목표에 간절하게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의 가난함을 피부로 느끼고 자랐기에 이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리라고 제 일의 목표로 삼고 생활하였지만 요즘에사 돌아보니  지난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고,  또 거기에 집착하다 보니 정작 허망함과 어리석음이 앞섰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되며,  

이를 제거하는 방법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한 매 순간의 알아차림을 통해서 갈애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안녕하세요.
원산입니다.

갈애는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조건에 의하여 형성되어 만들어 진것은 일어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고통 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 있어 행복을 느끼며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 하지만 감각적 욕망에 집착하여 탐욕과 함께 행복을 추구 하지만 그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을 누리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만족할줄 모르는 행복이 사라지면서 괴로움으로 변하여 힘든 나날을 보내는것이 고통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이 갈애입니다.

* 즐거움과 탐욕이 함께하여 즐기는것이 갈애입니다.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이 갈애는 거기서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를 잡습니다. (대념처경)*

감각적욕망 으로 오는 행복은 일시적 이지만 감각적욕망을 벗어나는 행복은 삶의질을 향상 시키고 편안하고 안정되며 진정한 지혜의 행복 입니다. 진정한 지혜의 행복은 알아차림과 깨어있음 입니다. 또한 팔정도를 통해 이루어 질 것 입니다.  지암스님께서 시간 나실때마다 말씀 하시는 순간순간 마다 나의 행에 대해 알아차려라. 깨어있어라 하시는 말씀이 갈애를 이해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 입니다.
아직도 스님의 말씀이 귓전에 생생합니다. 실천을 하지못해 죄송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보장화(김경희)
육근(안, 이,비,설,신,의)가 육경(색,성,향,미,촉,법)의 각각에 접촉을 하게되면 식 즉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마음이 작용할때 집착의 형태로 나타나는것을 갈애라고 합니다. 갈애는 3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를들자면 종소리가 났는데, 혹자는 이 소리가 너무 아름답게 들려서 이소리에 빠져 즐기고자하는 맘이 첫번째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로 즉 감각 대상을 즐김을 말합니다. 둘째 존재에 대한 갈애로 이 종소리가 영원하길 바라는 맘입니다. 셋째 비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혹자는 그 종소리가 시끄럽고 싫다고 느낄수도 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이 소리가 사라져라 하는  갈망의 상태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갈애는 괴로움의 전제 조건이 되며, 반복된 갈애는 취착으로 되어 우리의 업이되고 이것은 윤회의 원인이 되게됩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알아 본 갈애를 정리해 본 것 입니다.
 생활하면서 많은 욕구와 느낌이 일어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때론 잠깐 때론 몇분, 몇십분, 몇시간 그 이상....시간이 길어질수록 행복한 것은 취착의 형태로 싫은것은 협오, 분노의 형태로 다방면(오욕)에서 나타나게 됨을 봅니다.  그 중에서 나의 분노 유발이 큰 것은 무시당하고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인 것을 보면 명예욕에 대한 갈애가 큰 것 같습니다.  구하려해도 구해지지않는 상황은 나를 번잡하게 나를 괴롭게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좋은 상황은  그걸 붙잡으려는 욕구가 또 나를 안타까운 맘에 빠뜨리고 또 괴롭게 만듭니다. 이 모두는 나의 육근이 대상을 접촉하므로 해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만들어진 상황임을 통찰하여 갈애가 깊어져 취착으로 가는 상황을 막는게 나의수행이고, 불법을 배우는 의의인 것 같습니다.
귀의 삼보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덕현(최성일)
덕현 숙제 올립니다.

갈애의 사전적 의미는
"범부(凡夫)가 목마르게 오욕(五慾)에 애착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중생이 오욕을 갈구하기를 목마른 사막에서 물을 찾는 것처럼 하며 이로 인해 탐진치 삼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갈애는 나이가 먹으면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재정적인 큰 성공, 아름다운 이성 등에 많이 끌렸다면 요즘은 모든 것이 무탈하고 안정적인 것울 더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예전에 바라던 것도 같이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좀 더 심적으로 안정을 찾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육체적 나이로 인한 변화이기보다는 게으름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그리고 남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더 큰 것같습니다. 알아차림만큼 실천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자연성(강은아)
'갈애'를 떠올렸을 때 목마를 때 물 찾듯이~ 갈증, 갈구, 갈망...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계속해서 허덕거림, 근본적인 욕망이 생각이 났고,
숙제를 하면서는 아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배는 산만한데 목구멍은 바늘이라 물 한모금 들어가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욕망, 욕구로 주린 배를 채우려 하지만 굶주림, 목마름에 늘 허덕이는 만족, 충만, 풍족이 없는 아귀의 모습에서 갈애를 떠올렸습니다. 

숙제를 하고 있는 지금 잘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글을 잘 쓰는 재주도 없고, 머리에 든 지식도 많지 않은데 숙제는 잘하고 싶으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오래걸리고 머리에 쥐가 납니다.^^
(숙제 잘한다는 것 또한 내가 정해 놓은 기준(상)에서 일어납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숙제 포기도 하고, 
그냥 대충 써서 올리면 내가 나를 알고... 
쉽게 가든 어렵게 가든 숙제는 어쨌거나 저를 돌아보게 하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 

숙제를 잘하고 싶은 이유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이고 이번에 갈애를 생각하면서는 
나라는 존재가 있게끔 하는데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게 남에게 인정받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구나~ 입니다.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차, 외모 꾸밈...이쁘게 보이고 싶고, 체면(싸바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 그게 그치지 않아 갈애로 계속 허덕거리고, 그 욕구를 위해 재물을 갈망하고, 5욕(식욕,색욕,수면욕,물질욕,명예욕)이 같이 뒤섞여 윤회를 계속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욕구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분노, 화가 나고 때로는 좌절해서 죽고 싶기도 합니다. 욕구는 호르몬이 넘치는 젊은 시절에 더 강했던 거 같고 나이도 꺾인 지금은 수행을 겸해서 하니 예전보다는 낮아진 것 같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반대인 욕구도 나옵니다.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가끔씩 귀차니즘이 발동을 하면 사람들과 상대하기 싫고 혼자서 고독, 우울, 외로움...슬픔을 즐기기도 합니다. 

갈애, 욕망의 근원을 없애는 방법은 욕구가 일어났을 때, 내가 갈애하고 있구나~ 욕구가 일어났구나~ 알아차리고 '관세음보살' 염불로 번뇌망상 멈춤! 잘 안되도 오래 걸려도 계속 노력하니 끝없이 번뇌망상에 놀아나던 데서 조금씩 나아집니다.
더불어 지금 가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늘 놓치지 않으려 한다! 나무상주시방 불법승() 

무상계에 나오듯이 12연기를 잘 이해하고 관찰해서 갈애를 없앨 수도 있고... 부처님께서는 무수한 설법으로 우리에게 갈애 멸하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내가 마음이 나지 않아 온전히 그 길을 찾지 않을 뿐...()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성월심(정은주)
성월심  숙제 올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갈애의 정의는
저의 자존과 타인으로 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저의 
탐진치 삼독에서 오는 그  
큰 욕망 덩어리가  계속
충분히 충족.해결되지 못하고
저의 마음에 내재되어 때때로
수면으로 올라오는 찝찝하고
불편하고 답답한 갈증이
갈애라 생각합니다 

지금 저를 붙들고 있는 집요한
갈애는 영어라는 언어를 해결
하지 못해서 오는
불만족 답답함 불편함 뿐만 
아니라 좀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직업 환경을 꿈꾸고 있는 
그 바탕 속엔 저의 능력과 
60대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는 것을 제 스스로에게  
증명 하고픈 욕망과  더불어 
드러 내놓고 싶은 치심 가득한 
명예욕 또한 많이 있습니다 

현재 저의 말하고 읽고 쓰고 하는 
영어 능력이 국민학교 졸업
정도는 될까요?
오랜 세월동안 시작과 중단을 
반복하며 실패를 해 왔던 것은
구체적인 꿈이 없으니 당연히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공부 
한적이 없으니결과 또한 
좋을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구체적인 꿈과 계획을 갖고 
우선 중학교 졸업 단계의 
영어 실력을 갖추기 위하여 
매일 영어 회화와 읽기.쓰기
공부를 시작한 것은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잘 
마치고 부터 입니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제 인생 후반의 출발점에서
육체를 대신하여 언어를
다인종과 더불어 마음을
나누는 일과 봉사를 하며
늘 가지고있던  저의 숙제를 
잘 마무리 하고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저의 갈애가 제 자신을 우울
하게 만들고 좌절하고 분노를 
일으키는 잘못된 욕망의 길로 
향하지 않고 제 자리를 찿아 
가고 또한 보살행을 흉내라도
하게 된것은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인색하고 인정없고
시정없는 못된 저의 업들을 
선원장 지암스님께서 지적해 
주실 때마다 얼굴 뜨거운 적도 
부끄러운 적도 많았지만 곡해
않고 제 자신을 돌아 보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순간들이 
쌓이고 

인연연기를 조금씩 알아가며
악업을 짓지 않으려 노력하고
6바라밀을 적극 실천하려
노력했던 수행들
염불하고 절하며 하기 싫고
힘들었던 순간들 그 마음을 
내려 놓으며 인욕 정진 했던
순간들 

물론 여전히 모든 행위의 우선
순위가 제 자신과 이익이 먼저
이지만 그래도 나 아닌 남을
먼저 챙기려 하는 인위적이고 
불편했던 순간들이 수행을 통해 
부처님 법을 알아감에 아주
조금씩 자연스러워 지는 것을 
느낄 때도 있지만 여전히
순간순간 올라오는 저의 용심
을 바라보며 헉 할때도 많지만 

어떠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살아가고 수행하여야 하는지를
알게 기회 있을때마다 늘 
가르침을 주신 지암스님께
감사 올리며 함께하는 법우님
께도 감사합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 작성일
#시아원(한희주) 

갈애 라는 뜻을 평소에 알고 있던 의미로 파악하면 애타게 갈망하고 사랑하는 무엇이라고 알고있었습니다.
이번 수업에서 갈애[渴愛]가 불교적 의미의 용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불교적인 의미의 갈애를 찾아보아 보았습니다 (渴愛 :목이 몹시 말라 갈증이 심할 때 절실히 물을 찾듯 범부가 5욕에 탐착함을 말한다. 출처 다음사전)

사랑 애 愛 자로 단순히 생각해 보면
너무 사랑해서 갈애라는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인간 심연의 깊은 욕망에서 올라오는 욕심을 의미한다니 참 씁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의 갈애는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해 보니,   삶을 살아가는 나의 자세에 대한 인정욕구가 제일 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심히 사는구나!
하는 인정을 갈애하며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가장 강한 갈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반면 모든 사람의 시선과 인정에서 아주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공존합니다.
이것 또한 게으름을 기초로 하는 나의 마음 속 깊은 갈애 인것 같습니다 .
모두와 함께하는 즐거움에 대해 원하면서도, 혼자 묵묵히 있을때의
고요함 또한 강하게 원하는 것,
이 이중적인 나의 모습에서 가끔 짜증이 올라오곤 합니다. 글을 쓰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또한 인정욕구가 강해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

책임감 & 무책임 
이 사이를 갈팡질팡 하는 나의 본성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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