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火. 2학기를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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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24-05-23 15:52 조회5,0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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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 붓다의 세상> 다큐 시청 소감에 부쳐
- 자성화(신은영) 글
이번에는 수업시작 전부터 생각할 거리가 올라와서 좀 당황하긴 했습니다. 이번도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구요. 그만큼 더 깊이 탐구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이겠죠.
동영상을 보면서 한국의 절들이 참 아름답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는 그냥 산좋고 물좋은데 가면 절이 있구나 정도였는데, 불교를 알고 난 후에는 절은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한 방편이기고 하구요.
절에 들어서면 다리를 건너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부처님을 뵐때까지, 수미산 중턱의 사천왕을 지나고, 더 나아가면 결국엔 부처님을 만나는, 부처를 깨닫는 그런 배치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학기에 배운 욕계, 색계, 무색계의 수많은 하늘들도 생각나구요.
화엄사 대웅전에 계신 법신, 보신, 화신 부처님인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과 수인, 등을 보면서 지난 시간에 배웠던 지권인, 항마촉진인, 설법인 등을 다시금 복습할 수 있었습니다.
화엄사 홍매화를 보면서 한 스님께서 홍매화의 붉은 꽃빛은 속세 중생의 간절한 마음이요, 그 향기는 불보살님 전에 드리는 불자의 공양이라는 말씀도 인상깊었습니다.
부처님의 세계는 온갖 꽃들고 장엄되어 있고, 사소한 것도 절대적 가치를 지니며, 이 세상은 홀로가 아닌 끝없이 연결된 장엄한 화엄의 세계라고 하십니다.
송광사와 통도사도 소개 되면서 부처님 일생을 나타낸 8상도를 보면서 다시한번 4성제와 부처님이 설법하신 삼법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초전법륜경)’라고 하십니다.
불교를 만나고 스님을 만나 공부를 하면서 나라고 믿는 내 속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욕망이나 갈애를 가감없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걸 즐기기 위해, 또는 가져지지 않는 걸 갈애하면서, 가져도 고통, 안가져도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겪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하는 걸 보면 참 어릭석은데도 불법을 만나면서는 이것들을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는 걸 알고 결과는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죠. 부모탓도 아니요, 남탓도 아니요, 전생탓도 아니고, 환경탓도 아닌, 그저 내 신구의 삼업의 결과입니다.
1학기 화엄경을 공부하고 나서 변한점을 생각해 보니 그다지 눈에 보이는 결과는 잘 찾기가 어렵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물들어가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을 어느 순간 느낄뿐입니다. 화엄경에서 특히 보현보살의 행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도 중요한… 보리도를 이루고 보살행을 실천하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보리도와 보살도를 동시에 닦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을 통해 다시한번 생각한건, 이 세상은 끝없이 연결되어 있고, 정말 영원한 건 없고(특히 인간의 감정과 생각), 작은 것이 큰것을, 큰 것이 작은 것을, 서로 머금으며 하나하나의 톡특하면서도 또 같은 성질을 가진 정말 화엄의 세계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을, 더럽고 깨끗함을, 작은 나의 그릇에 껴 맞추면 안되는 걸 생각합니다. 끝간데 없는 우주속에서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로 살면서 희노애락 우비고뇌하는 제 자신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원해서 이세상에 있고, 갈애하고 또 갈구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착각하면서..
- 자성화(신은영) 글
이번에는 수업시작 전부터 생각할 거리가 올라와서 좀 당황하긴 했습니다. 이번도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구요. 그만큼 더 깊이 탐구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이겠죠.
동영상을 보면서 한국의 절들이 참 아름답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는 그냥 산좋고 물좋은데 가면 절이 있구나 정도였는데, 불교를 알고 난 후에는 절은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한 방편이기고 하구요.
절에 들어서면 다리를 건너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부처님을 뵐때까지, 수미산 중턱의 사천왕을 지나고, 더 나아가면 결국엔 부처님을 만나는, 부처를 깨닫는 그런 배치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학기에 배운 욕계, 색계, 무색계의 수많은 하늘들도 생각나구요.
화엄사 대웅전에 계신 법신, 보신, 화신 부처님인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과 수인, 등을 보면서 지난 시간에 배웠던 지권인, 항마촉진인, 설법인 등을 다시금 복습할 수 있었습니다.
화엄사 홍매화를 보면서 한 스님께서 홍매화의 붉은 꽃빛은 속세 중생의 간절한 마음이요, 그 향기는 불보살님 전에 드리는 불자의 공양이라는 말씀도 인상깊었습니다.
부처님의 세계는 온갖 꽃들고 장엄되어 있고, 사소한 것도 절대적 가치를 지니며, 이 세상은 홀로가 아닌 끝없이 연결된 장엄한 화엄의 세계라고 하십니다.
송광사와 통도사도 소개 되면서 부처님 일생을 나타낸 8상도를 보면서 다시한번 4성제와 부처님이 설법하신 삼법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초전법륜경)’라고 하십니다.
불교를 만나고 스님을 만나 공부를 하면서 나라고 믿는 내 속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욕망이나 갈애를 가감없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걸 즐기기 위해, 또는 가져지지 않는 걸 갈애하면서, 가져도 고통, 안가져도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겪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하는 걸 보면 참 어릭석은데도 불법을 만나면서는 이것들을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는 걸 알고 결과는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죠. 부모탓도 아니요, 남탓도 아니요, 전생탓도 아니고, 환경탓도 아닌, 그저 내 신구의 삼업의 결과입니다.
1학기 화엄경을 공부하고 나서 변한점을 생각해 보니 그다지 눈에 보이는 결과는 잘 찾기가 어렵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물들어가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을 어느 순간 느낄뿐입니다. 화엄경에서 특히 보현보살의 행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도 중요한… 보리도를 이루고 보살행을 실천하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보리도와 보살도를 동시에 닦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을 통해 다시한번 생각한건, 이 세상은 끝없이 연결되어 있고, 정말 영원한 건 없고(특히 인간의 감정과 생각), 작은 것이 큰것을, 큰 것이 작은 것을, 서로 머금으며 하나하나의 톡특하면서도 또 같은 성질을 가진 정말 화엄의 세계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을, 더럽고 깨끗함을, 작은 나의 그릇에 껴 맞추면 안되는 걸 생각합니다. 끝간데 없는 우주속에서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로 살면서 희노애락 우비고뇌하는 제 자신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원해서 이세상에 있고, 갈애하고 또 갈구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착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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